정부가 영남권 신공항을 건설하는 대신 김해공항을 확장하겠다고 발표하자(21일), 매일신문은 1면을 백지(白紙)로 발행하면서 '신공항 백지화, 정부는 지방을 버렸다'는 굵지만 짤막한 한 줄 기사만 게재했다.(22일)
백지 발행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정부의 신공항 백지화에 대해 분명한 항의와 지역민의 울분을 생생하게 표현했다'는 것이 하나였다.
'1면부터 조목조목 따져서 거세게 비판을 해야지, 백지는 아쉽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둘 모두 대구경북의 민심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색적인 견해가 있었다. 서울에서 발행하는 한 일간지는 '백지신문'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어제 대구의 매일신문이 박근혜정부의 영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에 항의하는 뜻으로 1면을 백지로 발행했다. (중략) (이에 대해) 지역이기주의를 대변하는 편집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우세하다. 오히려 이 신문이 대구'경북 지역에만 유리한 목소리를 내왔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중략) 지역 간 이익이 충돌할 때 자기 지역의 이익만 대변한다면 언론으로 평가받기 어렵다.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보도를 해야 사회적 공기로서의 역할에 부응하는 것이다.」
칼럼대로라면 수도권에서는 '매일신문 1면 백지 발행'이 지역이기주의를 드러낸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매일신문이 밀양 신공항 유치를 지지했던 것, 신공항 무산 뒤 항의 보도로 일관하는 것이 '지역이기주의'란 말인가? 만일 신공항 건설지로 대구와 경북, 경남과 울산이 희망했던 밀양이 아니라 부산이 희망했던 가덕도가 선정됐더라도 매일신문이 이처럼 극렬한 비판 보도를 계속할까?
아닐 것이다. 비록 안타깝고 억울하다는 판단이 서더라도 백지신문을 발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 발표 이후 지금까지처럼 비판 일색으로 보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 정부는 약속을 지켰고, 대구경북과 경남, 울산 사람들에게 가덕도는 효용성이 떨어지지만, 영남권에 새 국제공항이 생겼으니 말이다.
대구경북인과 매일신문은 밀양이든 가덕도든 '투명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입지를 선정하면 수용하겠다'고 누차 밝혔다. 그럼에도 대구와 경북, 경남과 울산이 밀양 유치를 강하게 희망했던 것은 국가와 지역 발전에 밀양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이지, 지역 이기심에서 기인한 떼쓰기가 아니었다.
주지하다시피 가덕도는 국토의 한쪽 끝에 위치해 있어 부산공항이지, 영남권 거점공항 역할을 수행하기는 적절치 않다. 다른 건설 조건을 떠나 이용자 수에 한계가 있고, 운영 실패 가능성을 짙게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경북이 밀양보다 더 가까운 위치를 두고도 밀양을 지지했던 것은 영남권 전체와 공항의 성공적 운영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 칼럼은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보도를 해야 사회적 공기'라고 했다. 이는 마치 대구와 경북, 울산 사람들이 원하는 신공항은 대한민국 공동체의 이익에 역행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1천300만 대구와 경북, 부산과 경남, 울산 시민은 각 지역 사회 구성원인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이다. 영남지역의 발전은 지역 발전인 동시에 국가 발전이다.
대한민국은 사회계약에 의해 맺어진 국가다. 절대군주와 귀족, 평민, 노예로 구성된 신분사회가 아니다. 사회계약은 서로 대등하고, 잠재적으로 상호 적대관계의 가능성까지 있는 사람들이 맺는 것이다. 계급사회가 아닌 이상 이해나 가치의 대립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상호 동등하고 적대적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납득할 수 있는 타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한국 사회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그런데 수도권 사람들은 지방인들에게는 권리라는 게 애당초 없어야 한다고 보는 모양이다. 침해받고 있는 권리의 회복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부당한 특권을 주장하는 사람으로 몰아가고, 정당한 권리 주장을 지역이기주의로 둔갑시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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