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새 한 마리가 '위험! 추락주의' 표지판 위에 앉아 있다. 수없이 뻗은 나뭇가지를 흔들며 무성한 녹음 속에 무리지어 떠들다 혼자 빠져나온 듯하다. 생김새를 보니 근처 수목원에서 주변이 궁금해 마실 나온 것이 분명하다.
붉은 신호에 걸려 멈춘 사람들은 차창 밖으로 저마다 도시의 좌표를 익히고 있고, 난 이름 모를 새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정체된 길에 앉아 있다.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 새는 위험을 모른 채 날개와 꼬리를 부산하게 흔들며 제 목소리를 한껏 뽐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끝없이 돌고 있는 행성에 앉은 내게 언젠가는 추락할지도 모른다고 '위험! 추락주의'라는 경고를 무수히 보내고 있는데 나도 저 새처럼 구김살 없이 지구에 걸터앉아 있는 것은 아닐까.
추락할 확률이 새보다 수십 배 높은 고위험군인 것을 잊고 있었다. 새의 뼈는 가벼워 여차하면 바람을 가르며 공중으로 날아갈 수 있는데 내 뼛속에 가득 차 있는 것들은 도저히 훑어낼 수 없는 것들이다. 머릿속에는 새벽부터 일어나 늦은 시각 잠들 때까지 해야 할 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뼛속까지 무겁다.
신호가 바뀌자 도망치듯 차를 몰아 한참을 달려나갔다. 날 수 없는 대신 달릴 수 있는 재주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논공공업단지로 들어서는 터널을 몇 개 지나 지랑교를 달렸다. 지랑교라는 어감 때문인지 그 다리를 지날 때 가끔 시야를 자우룩이 감싼 안개가 조금씩 벗겨지며 산의 형체가 드러날 때면 설화의 한 대목 같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터로 가는 사람들 틈에서 잠시나마 생각의 호사를 누리는 일도 나 자신에게 내리는 특혜라는 생각이 들어 삶의 고단함이 한결 누그러진다.
FM 89.7㎒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한참을 달려온 내 마음에 동요되지 않고 여전하다. 평온하게 나를 이끌고 와 일자리에 안전하게 내려서 하루의 사명을 다하라며 낮은음자리표로 다소곳하다. 잠시 몇 소절을 놓쳤지만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신청곡이 아니라서 주어진 대로 듣고 있지만 첼로 연주는 혼자 길을 떠났을 때 내 앞섶에 앉아 심연을 파고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오래된 친구 같다. 떠들썩하지 않고 깊고 그윽하다. 지친 어깨를 위무하는 듯한 보잉은 마침내 온몸을 켜며 공명을 받아들이게 한다.
내게 열리는 하루는 몇 개 의식의 터널을 지나와 마침내 환하게 열린다. 작은 새 한 마리를 보며 내 앉은 자리를 돌아보게 하고, 순순히 주어진 소리를 듣게 함으로써 세상과 소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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