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EU의 미래

유럽연합(EU)이란 구상의 효시는 1946년 처칠의 스위스 연설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앞선 1939년 9월에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이미 제시한 것이다. 국제연맹 산하에서 군사 부문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1932년 영국에서 창설된 '뉴 코먼웰스 소사이어티'(New Commonwealth Society)의 기관지인 '뉴 코먼웰스 계간지'(New Commonwealth Quarterly)에 기고한 '국가 간 연합주의가 갖는 경제적 조건'이란 논문이 바로 그것이다. ('시간 벌기, 민주적 자본주의의 유예된 위기' 볼프강 슈트렉)

이 논문에서 하이에크는 "공통의 경제 질서 없이 공통의 외교와 방어 정책을 가지는 국가들의 연합은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다"며 연합의 결속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통일적 경제 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동일 경제권을 지향하는 EU의 정책을 감안하면 참으로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하이에크는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첫째 관세 없이 인간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단일시장'을 가져야 할 것, 둘째 회원국의 경제 정책이 허용되는 폭과 간섭은 극도로 제한되어야 할 것, 셋째 정치의 시장 간섭은 개별 국가 차원이든 연합 차원이든 철저히 배제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각국의 독자적 화폐 정책도 포기되어야 할 것 등이다.

EU의 기획자들이 하이에크의 논문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의 유럽'을 향해 걸어온 과정은 하이에크가 그린 노선 그대로이다. 자국 화폐를 포기하고 유로화를 쓰는 유로존(19개국)이 탄생한 것을 보면 그 예지력에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문제는 하이에크의 구상과 달리 EU의 정책과 개별 회원국의 정책이 계속 충돌해왔다는 점이다. 하이에크는 시장에 대한 간섭은 회원국 차원이든 연합 차원이든 제한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회원국은 자신의 경제 사정에 맞는 정책을 펴려 했고, EU 집행부는 개별 회원국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하나의 정책을 고집했다. 그 결과가 엄청난 규제다. 시장에서 파는 바나나의 규격에 대한 규정만 56쪽에 달한다고 한다.

결국 EU 집행부가 거대한 초국적 정부로 군림하면서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는 얘기다. '브렉시트'의 이유도 부분적으로는 여기에 있다. EU는 존속될 수 있을까? EU의 개입에 넌더리를 내는 회원국이 늘어나고 있음을 감안하면 낙관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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