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앞으로 얼마나 더 참아야 합니까?"
대구공군기지(K2) 주변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전투기 소음 피해와 재산권 제약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나마 특별법이 제정되고 K2 이전사업이 추진되면서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지만, 최근 신공항 백지화로 물거품이 됐다. 주민들은 더는 견딜 수 없어서 정부가 나서서 K2 이전에 대한 해법을 내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람이 살기 어려운 수준의 소음
30일 낮 12시 20분쯤 대구 동구 지저동. 전투기 한 대가 대구공항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귀가 찢어질 듯한 소음이 퍼졌다. 전투기가 급상승하면서 소음은 천둥소리처럼 무겁고 날카롭게 퍼졌다. 지저동 거리에 서서 이야기하던 사람들은 말을 멈췄다. 스마트폰으로 통화하던 사람은 찡그리면서 귀를 막았다.
한 식당 주인은 "전투기 소음 때문에 날이 더워도 창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며 "식사를 하던 손님들도 전투기가 뜰 때마다 귀가 먹먹해져 식사를 제대로 못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대구공항의 소음은 전국 15개 공항 가운데 광주와 더불어 최악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대구공항의 지난해 연평균 소음은 최고 88웨클을 기록했다. 7개 측정 지점 중 북구 구암동(67웨클)을 제외하곤 모두 79~88웨클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 때 항공기 소음 피해 기준을 '75웨클'로 설정했다. 그 이상이면 주거 시설로 조성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구공항 소음은 시간이 지나도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최근 10년간(2005~2014년) 7개 지점의 소음은 1곳을 제외하곤 모두 75웨클 이상이었다. 특히 지저동(84~86웨클)과 용계동(80~88웨클), 신평동(88~94웨클), 방촌동(75~80웨클) 등 동구의 4개 지점이 높았다.
은희진 K2소음피해비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귀가 찢어질 정도로 소음이 심하다. 85웨클 정도만 돼도 일상 대화나 전화가 불가능한데 환경부 측정 지점 이외에 95웨클을 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공항이 정상적으로 추진돼야 K2 이전도 쉽게 풀릴 수 있었는데, 신공항이 백지화되고 K2 이전 논의가 중단돼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재산권 제약 등 낙후된 삶터
K2는 소음피해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을 낙후된 채 내버려두게 하였다. 군부대 내 탄약고로 인한 '폭발물 제한구역'과 고도제한 등으로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주민 민원이 많아지자 최근 국방부가 탄약고 이전 계획을 세우는 등 개선안을 내놓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1972년 국방부가 지정한 비행안전구역에 따라 K2 주변 고도제한 면적은 62.3㎢로, K2 면적(6.61㎢)의 9배가 넘는다. 고도제한 면적 내에 거주하는 주민은 60만 명이나 된다. 대구경북연구원에 따르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개발 피해액만 최소 3조원이다. 낙후된 K2 주변 8개 동의 2000~2010년 사이 연평균 인구 감소 비율(-0.18%)은 대구 전체(-0.02%)보다 훨씬 크다.
K2는 현재 추진 중인 개발사업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구 검단들에 추진 중인 '금호워터폴리스 산업단지' 개발사업도 항공기 소음 탓에 주거 용지를 애초보다 축소하거나 조정해야 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동구 안심연료단지 일대의 안심지구개발사업도 2022년 예측 항공기 소음이 75~85웨클 수준이어서 향후 주거시설 조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방부가 관할하는 대구공항은 광주공항과 함께 국토교통부의 공항 주변 소음대책지원사업에서도 빠져 있다. 김포'김해'제주'울산'여수'인천공항은 지난달 29일 국토부가 발표한 소음피해대책 대상에 포함됐다. 이는 국토부 소관의 민간공항에 적용되는 '공항소음방지법'에 따른 것이다. 국방부 소관의 대구공항은 별도의 법을 마련하지 않고는 소음대책 주민 지원사업에 포함될 수 없는 처지다.
박정우 K2 비행장 이전추진위원회 부회장은 "실낱같은 희망도 사라져 자포자기한 상태다. 신공항과 연계해 K2 이전 하나만 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더 싸울 힘도 없다"며 "하지만 앞으로 위원회를 재정비해서 이달 중순쯤 주민들이 요구할 수 있는 대책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웨클(WECPNL):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권장하는 항공기 소음을 평가하는 단위다.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발생하는 소음도에 운항 횟수, 시간대, 소음의 최대치 등에 가산점을 주어 종합 평가하는 것으로 단순히 소리 크기만을 나타내는 단위인 데시벨(㏈)과 다르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