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은 산스크리트어로 보디사트바(Bodhisattva)의 소리 음사인 보리살타의 준말이다. 깨달음을 구하며 수행하는 구도자이다.
보살의 용어와 개념은 기원전 2세기에 나왔다. 그때의 보살은 본생보살이다. 대승보살의 경우에는 개개의 인격에 준하여 복수로 사용되어 그 서원과 회향에 따라 불렸다. 그것은 끝까지 중도 포기하지 않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이며, 자기의 공덕을 남에게 돌려 회향하는 헌신이다. 물론 지금은 재가 신도인 여성만을 '보살'이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대승의 등대는 보살의 열망이다. 그 뜨거운 원과 의지가 불빛이 되어 어두운 밤의 등대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열망은 자기 자신만을 지키는 해탈이 아니라 오탁악세에서 일체중생의 행복을 수호하는 대변자이다.
큰 보살은 두 가지 힘을 가진다. 하나는 번뇌의 힘이요, 다른 하나는 지혜의 힘이다. 만약 보살이 번뇌의 힘이 없다면 모든 중생과 같이 갈 수 없으며 중생이 가는 곳을 알 수 없다고 한다. 모든 보살은 일체중생에게 이익을 베풀게 할 수 있게 스스로 번뇌를 가진다. 이 번뇌는 깊은 바닷물처럼 큰 배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보살의 번뇌는 중생의 번뇌라서 때로는 중생의 번뇌 속에 갇혀버려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전 국토의 모든 절이 불 질러졌다. 두 군데만 살아남았다. 그 후 전각은 대부분 복원되었다. 법당에서는 혁명적 사건이 일어났다. 전각에서 보살은 퇴출되고 부처님은 더 크게 조성되었다. 보살은 금강문을 지키는 동자로 밀려난 것이다. 백성을 외면하고 국토를 버린 용기 없는 보살은 역사 앞에 준엄한 심판을 받은 것이다. 이순신과 사명당의 전각이 전국의 명산에 현창(顯彰)운동이 활발하게 된 것도 전쟁 후의 결과이다.
그렇기에 보살은 큰 보살이어야 한다. 자비와 지혜는 번뇌력을 먹고산다. 모든 어머니를 대보살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머니의 번뇌력이 어떤 목숨보다 위대하기 때문이다. 대지론에도 보살은 중생을 이롭게 하기 때문에 오욕을 받으나, 불 집게로 불을 잡는 것처럼 불을 잡아도 불에는 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마치 하얀 연꽃이 마른 땅에 피지 않고 젖은 땅에 피는 것처럼….
조주 스님이 "10세의 어린 사미라도 나보다 나으면 기꺼이 배우고, 100세의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하면 가르치리라"한 것도 보살은 차안에서 피안으로 넘나들며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여야 한다.
보살은 의지를 가진 적극적 존재로서 자기의 이익을 우선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큰 보살 마하살이어야 한다. 중생의 삶에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지고 가야 한다. 유마 거사도 "일체중생이 아프니 저도 아픕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자비는 타인을 부모 형제 친족처럼 여기는 중생과 보살의 차별마저 보지 않는 절대적인 자비이다.
보살도는 보리심을 발하는 중생의 구제를 위해 원(願)을 발한 이미 보살이 된 사람을 말한다. 적천 스님은 중생을 섬기며 공양하며 자기 자신을 종으로 바쳐서라도 새로운 죄는 짓지 않기로 평생 다짐하기도 했다.
보살의 마지막은 수희공덕이다. 보살은 모든 중생이 지은 선업을 함께 기뻐한다.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깊은 지위에 도달하는 것을 함께 기뻐한다. 오래오래 이웃과 더불어 계시기를 비는 기도와 간청을 올린다.
원이 없는 수행자는 보살이 아니다. 서원을 세운 보살은 이제 보리를 성취하는 보살도를 시작하자. 중생에 대한 보살의 복전은 무한한 자비심에서 힘이 생겨난다. 이미 큰 힘을 성취한 보살들이나 새로이 시작한 초심 보살들아 원을 만들자. 작은 나뭇가지는 꺾을 수 있지만 큰 가지는 꺾지 못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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