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다른 남자에게 애정, 키스, 사랑을 줬지만 내게는 단 한 번도 준 적이 없다.' 2014년 '캘리포니아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로저가 범행 전 유튜브에 남긴 말이다. 이성에 대한 증오가 엄청난 반(反)사회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최근 강남역 사건의 성격을 두고 각계, 단체 간 많은 토론이 있었다. '조현병 환자에 의한 단순 살인이다'부터 '여성 증오가 중요한 범죄 원인이니 여성 혐오가 맞다'는 얘기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강남역 사건'을 보는 다양한 시각들을 정리해 보았다.
◆2006년 무렵 '여성 혐오' 현상 출현
루저녀(남자를 무시하는 여자), 김치녀, 된장녀 같은 표현이 등장한 것은 2006년 무렵. 이런 용어들은 젊은 여성 비하 표현으로 확대, 재생산되며 SNS상에서 빠르게 퍼져 나가 사회 이슈화되었다.
물론 그 대척점에 '쩍벌남' '무뇌남'(無腦男) 같은 남성 조롱 표현도 같이 유통됐다. 문제는 이런 여성 비하 표현이 상당수 남성의 공감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3월 여성정책연구원의 '성 평등 가치갈등 설문조사'에 의하면 남성의 54%가 이런 표현에 공감한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8.6%는 SNS 댓글에 참여하거나 퍼 나르기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원은 직장인 남성들이 가족 부양, 사회적 성공, 직장 내 경쟁에 내몰리고 여기에 전통적 우월감, 남성성 유지에 집중하다 보니 성(性) 역할 갈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런 남성들의 스트레스는 그대로 여성 비하로 연결됐다. '한국에서 가장 혜택받는 집단'을 묻는 질문에 20, 30대 젊은 여성들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김치녀, 된장녀 같은 사회 현상 한편엔 남성들의 무의식적인 이성에 대한 불만, 여성 혐오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메갈리아'일베 충돌'''남녀 성 갈등으로
'강남역 사건'이 일개 살인사건 범주를 넘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데는 사건 자체가 가지는 중대성 외 다른 요인이 있었다. 바로 메갈리아, 워마드라는 남성 혐오 커뮤니티들이다. 이들 단체는 사건 초기에 '여자라서 죽었어요.' '살아 男은 ○○야 닥쳐' 같은 자극적인 문구들을 쏟아내며 '남혐'(男嫌)의 사회화를 시도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다른 대척점에 있는 일베 같은 남성단체들을 자극했다. 이들은 '왜 남자들이 피해자에게 미안해야 하는지, 왜 우리가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반발했다. 한 정신질환자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와 관련, 모든 남성들이 모욕당하는 현실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러면서 '내곡동 예비군 훈련사고' 때 여성들은 얼마나 관심을 가졌느냐고 되묻는다. 또 엄마들 손에 의해 저질러진 아동폭행'사망사고를 들며 같은 이유로 이 땅의 모든 중년 여성들을 잠재적 아동 폭행범으로 몰아간다면 수긍할 수 있겠느냐고 몰아쳤다. 이들의 극단적인 대립이 진행되면서 '여성 혐오범죄 규탄'은 남녀 성 갈등이라는 엉뚱한 방향으로 비화되었다.
◆여성 혐오 범죄 vs 묻지 마 살인
이 사건을 접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시각만큼 학계나 단체의 견해도 크게 갈렸다. 시민단체들은 '묻지 마 범죄와 여성 혐오가 결합된 사건'이라는 데 대체로 일치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여성 성의 살해'로까지 규정하는 시각도 있었다.
대구여성단체연합 김영순 대표는 "범인이 한 시간이나 화장실에서 여성을 기다렸다는 것은 명백한 여성 타깃 살인"이라고 규정하고 "그 이면에는 남성들의 여성 혐오라는 음침한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정신병자에 의한 불특정다수 살해'라는 데 무게를 둔 시각도 있었다. 영남대 허창덕 교수는 "'여성들이 날 무시해서'라고 말한 피의자의 진술은 정신병적 차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하고 "이 사건은 정신질환자에 의한 우발적 살인이라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 두 개의 시각을 따로 떼어 해석하지 않고 전체적인 연결선 상에서 해석하는 시각도 있었다. 대구가톨릭대 김동일 교수(사회학과)는 이 사건은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 마 살인 ▷'여성 혐오'라는 뿌리 깊은 성적 비하, 성적 불평등 ▷여성 혐오에 대한 일부 여성단체들의 과도한 반응으로 인한 성별 갈등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로 규정할 수 있다며 어느 한 개의 틀로 이 사건을 재단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분노조절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에서도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대구여성단체연합 김 대표는 "세월호, 천안함 사건에서 보듯 현재 우리 사회엔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고 '유영철 사건' 이후 여성 혐오범죄에 국가가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영남대 허 교수는 "우리 사회에는 너무 많은 절망, 분노, 좌절, 스트레스가 가득 차 있어 (유감스럽지만) '혐오범죄'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진단하고 사회의 분노를 조절하기 위한 사회 안전장치들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가톨릭대 김 교수는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이 탄력을 받고 있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우리 사회에 너무 성적 불평등이 만연해 있고 제도화되어 있다"며 "이런 불평등을 딛고 성적 평등을 이룰 수 있는 실질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는 한 이런 소모적인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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