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은애전(傳)

1790년(정조 14년) 전라도 강진에서는 아주 끔찍한 살인 사건이 있었다. 사건의 범인은 김은애라는 18세의 양갓집 여인이었고, 피해자는 이웃에 살던 안 노파였다. 현감 박재순은 마을로 와서 현장을 살피고 노파의 시체도 검사했는데, 연약한 여인 한 사람의 범행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했다. 이 사건을 보고 받은 관찰사 윤행원도 공모자를 찾아내려고 했지만 김은애와 주변 사람들의 진술이 일관되었기에 사건에 대한 결론을 짓고 살인죄로 처벌을 해야 했다. 그렇지만 현감과 관찰사는 모두 김은애의 사정을 딱하게 생각하여 쉽게 처리를 하지 못했다.

사건의 진상은 이렇다. 죽은 안 노파는 창기 출신으로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남 험담하기를 좋아했는데, 피부병이 심할 때에는 더욱 말을 삼가지 못했다. 노파는 가난하여 은애네 집에서 자주 곡식을 꾸었는데, 하루는 곡식을 꾸러 갔다가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은애를 모함할 계획을 세운다. 노파는 시누이의 손자인 미소년 최정련을 꾀어 한 가지 계략을 전한다. 최정련이 은애와 사통했다는 소문을 내고 다니면 결국 김은애를 얻을 수 있다고. 최정련은 소문을 냈고, 노파는 그 소문을 확대했다. 소문으로 은애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던 중에 김양준이라는 사람은 그녀의 결백을 믿고 아내로 삼았다. 그런데 시집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노파는 2년도 넘게 말을 만들고 다녔고, 거짓 소문에 시달리던 은애는 결국 자신의 결백을 지키려 노파의 집을 찾아가 그녀를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던 것이다.

마침 그해 여름 나라에 큰 경사가 있어 죽을 죄수를 기록하여 올리는데, 이 사건을 중하게 여기어 정조와 대신들이 함께 의논했다. 대신 채제공이 동기는 이해가 되나 살인죄를 저질렀으니 용서하기는 어렵다고 하자 정조는 해서에서 있었던 비슷한 사건의 예를 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때 감사는 놓아주기를 청하였고, 선왕께서는 그 말을 받아들였다. 이제 은애를 풀어주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풍속과 인심에 대한 교화를 풀 것인가. 그러므로 그녀를 용서하고자 하노라."

이 이야기는 이덕무의 문집 '아정유고'(雅亭遺稿)에 실려 있는 '은애전'의 내용이다. 정조가 김은애를 살린 일을 이덕무로 하여금 전을 짓게 한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일종의 판례로 남기려 한 것이다. 요즘 인터넷을 보면 여성이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행실을 문제 삼는 이야기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이야기들로 인해 피해자가 오히려 죄인 취급을 받고, 상처가 평생 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본다면 '은애전'은 현대에도 다시 생각해 볼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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