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일부터 뭘 하겠다는 것은 자기기만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만 30여 년 공직생활을 하다 지난 2월 기획재정부 출신이 아닌 중앙부처 출신으로는 처음 발탁된 정양호(56) 조달청장.
정 청장은 공부든 운동이든 내일로 미루지 않고, 곧바로 시작하는 '실천'과 '최선'의 마음가짐을 생활신조로 삼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항상 우수한 성적으로 두각을 드러냈던 그는 대학 입시에서 두 차례나 실패를 경험하면서 큰 보약을 얻기도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책읽기와 산책을 하는 부지런함, 3일에 1권꼴로 읽는 엄청난 독서량, 사색과 글쓰기로 공직생활 경험담을 모아 책으로 펴내기로 하는 등 그의 실천력은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장점이다.
정 청장으로부터 공직생활의 경험과 삶의 철학을 들어봤다.
-어떻게 자랐나.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 슬하에서 8남매가 어렵게 컸다. 6남매는 대학을 갈 형편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이 중학교 시절 안동시내에 있는 안동고에 갈 수 있으면 고등학교를 보내준다고 해 갈 수 있었고, 대학도 서울대를 갈 수 있으면 보내준다고 했다. 학창시절 경제적 형편을 감안해 졸업한 뒤 기업체에 가거나 공무원이 돼야겠다고 생각했고, 결국 공직을 택했다.
-산자부 출신 첫 조달청장이 된 배경은.
▶조달청은 기획재정부 외청 중 하나로, 그동안 기재부 출신이 주로 청장을 맡아왔다. 이번에 산자부 출신인 내가 조달청으로 온 배경과 역할을 생각해봤다.
조달청은 그동안 물건을 투명하게 구입하고, 싸게 사서 국고를 절약하는 역할에 중점을 뒀다. 이번에 내가 임명된 것은 기존 역할과 함께 산업 쪽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는 주문으로 해석했다.
공공기관 물품 조달비용이 연간 110조원인데, 조달청이 절반인 55조원가량을 차지한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신산업을 지원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 벤처기업도 조달시장을 디딤돌로 해서 커 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조달청도 중소기업청 등 다른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일정 정도 해결해주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조달청이 그런 방향으로 변모해 나갈 것이다.
-조달청 시스템 개선 계획은.
▶물품은 온라인 '나라장터'를 통해 구매하기 때문에 부정의 소지가 없을 정도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다만, 직접 개발하지 않은 제품을 수입해 눈속임으로 판매하는 등 거래질서 위반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책임을 묻는 대신 잘 만든 물건은 적극적으로 팔아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우선 55조원을 어떤 식으로 쓸 것이냐가 첫 번째 관건이다. 중소기업이 이를 통해 기술개발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품질 수준을 높여 향후 해외시장에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겠다. 오는 9월부터 창업한 기업끼리 건전한 경쟁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나라장터에 적용할 계획이다.
또 그동안 기업에서 만들어놓은 제품을 골라 구매하는 방식에서 나아가 어떤 식으로 어떤 조건으로 물품을 만들면 구입하겠다는 식의 맞춤형, 주문형 구매방식도 고려할 생각이다. 수요를 예측해 기술개발 등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공직생활 동안 기억에 남는 정책은.
▶사무관 때는 산업, 통상, 에너지 등 3개 분야 중 산업분야에서 주로 일했다.
바이오과장 할 때 바이오산업과 관련한 장기계획(그랜드플랜)을 짜는 등 바이오산업 육성에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했다고 자부한다.
또 디자인브랜드과장을 하면서 추진했던 정책도 기억에 남는다. 전 세계의 우수한 TV나 가구 등 각종 물건을 모아 산업계 관계자나 학생들이 직접 보고 느끼도록 한 '디자인코리아 2003'을 직접 기획했다. 또 디자인 분야 석학 콘퍼런스를 하는 등 디자인과 산업을 접목해 이 분야를 한 단계 높이는 역할을 했다.
국장 시절에는 에너지 관련 분야를 맡아 온실가스 감축정책, 전력수급계획 등을 세운 점을 보람으로 느낀다.
-민간 분야 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산업부 정책방향은.
▶제조업은 특히 세계적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독일, 일본에 이어 중국이 치고 올라오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기술력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중국은 인수합병(M&A)을 통해 경쟁력 있는 기업을 사들이고, 주요 분야 핵심기술자에 대해서는 기존 월급의 몇 배를 주면서 스카우트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그동안 기술개발 노하우를 상당히 축적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산업 경쟁력 강화전략이 세계 최고의 기술을 빨리 따라가는 '빠른 추종자 전략'이었다. 이제는 중국으로 인해 이런 전략을 바꿔야 할 상황이다. 앞으로는 신기술, 새로운 상품 개발 등을 통해 선도적으로 나가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정부의 정책지원시스템도 바꿔야 한다. 정부 안에서 각 부처와 공기관이 협업해야 하고, 대학 등과도 연계해서 시너지를 높여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큰 고비는.
▶대학시험에 두 번 떨어졌을 때와 공직생활 중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였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줄곧 성적이 좋았고, 그동안 실패를 경험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서울대 입학시험에는 두 차례나 떨어졌다. 시골에서 과외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었고, 학교 수업이 끝나면 모두 노는 분위기였다. 결국 영어나 수학 등에서 기초가 부족했기 때문에 대입 시험에서 떨어졌다. 이때 처음으로 실패란 것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나만 잘난 게 아니다'라며 겸손해졌고, 그 실패가 약이 됐다. 대입 삼수는 그동안 부족했던 것을 채워가는 과정이었다.
행정고시로 공직에 발을 들여놓은 뒤에도 한 차례 고비가 있었다. 사무관 8년을 하고 난 뒤 미국 유학을 갔는데 3년 6개월 만에 석'박사 과정을 모두 끝냈다. 박사 논문 주제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와 관련한 가격결정방식 모델이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잡지에 논문을 발표하니, 현지 대학교수가 교수직을 제안하면서 설득했다. 공무원을 계속할 것인지, 교수를 할 것인지 깊이 고민했다.
-업무시간 외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책읽기와 글쓰기다. 책은 국장이 된 뒤부터 많이 읽었다. 연간 130~140권씩 읽었는데, 지금까지 1천300권 정도 된다. 처음엔 경제, 경영을 비롯해 정보화,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미래 관련 책을 주로 읽다가 사서삼경 등 동양고전에 심취했다. 이후 자기계발과 관련해 성공한 인물들의 이야기,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주제로 독서범위를 넓혔다. 특히 시대적으로 새로운 주제나 이슈가 나올 경우 관련 서적 3, 4권만 읽으면 개념 정립이 되고,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책을 읽은 뒤 A4용지 1장 분량으로 느낀 점 등을 요약해 서평을 블로그에 꾸준히 올렸다. 지금까지 이 블로그에 다녀간 사람이 1천380만 명가량 된다.
-글쓰기는 어떻게 하나.
▶통상 새벽 4시쯤 잠이 깬다. 일찍 일어나 책도 읽고 산책도 하면서 공직자로서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고, 최근의 행사나 업무에 대해 고민도 한다. 특히 조달청장이 되고 난 뒤 거의 매일 페이스북에 글을 1편씩 올린다. 현장에서 이런 행사를 했다는 것을 올려 국민들과의 소통도 활성화하고 있다. 공직생활 30여 년 동안 느꼈던 승진, 인사, 상사와의 갈등, 조직생활 등에 대한 소회나 의견을 제시하는 등 지금까지 페이스북에 올린 에피소드만 40개에 달한다. 공직생활 에피소드 등을 추가로 정리하고, 공무원이 꼭 읽어야 할 책 추천, 언론 기고 등을 묶어 연말쯤 에세이집을 펴낼 계획이다.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변화가 일상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대학 때 배운 것은 1년도 지나지 않아 현실에서 써먹지 못할 정도다.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오래가지 못한다. 이슈나 사안에 따라 일의 내용과 심지어 직장이 바뀔 수 있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공부하는 자세, 그리고 실천이 중요하다. 시대 흐름을 읽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공부하는 자세를 생활화, 습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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