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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백산하를 가다] <2>문학·관광의 보고

의상 대사가 수많은 제자 길러낸 부석사, 무섬마을 최고 관광상품 외나무다리

석양이 아름다운 절집 부석사. 영주시 제공
석양이 아름다운 절집 부석사. 영주시 제공
무섬마을 항공촬영 모습. 매일신문 DB
무섬마을 항공촬영 모습. 매일신문 DB

힐링도시 영주는 소백산국립공원과 부석사, 무섬마을, 소백산자락길 등 문화자원과 역사를 간직한 관광의 보고(寶庫)다. 연간 관광객 500만 명을 목표로 도약하고 있다.

영주시는 곳곳에 산재해 있는 절집과 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자원화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한국 화엄종의 근본 도량인 부석사는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단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한 곳이다. 한국정신문화의 고장 영주는 힐링이 살아 숨 쉬는 현장이다.

◆화엄종찰 부석사

문 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고찰 부석사. 한국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다. 영주 부석면 봉황산 중턱에서 1천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숱한 애환과 사연을 간직한 채 한국불교의 융성을 이끌어 왔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인 부석사는 676년 신라 문무왕 16년 2월에 의상(義湘)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한 화엄종(華嚴宗)의 중심 사찰이다. 사찰에는 국보 제17호인 무량수전 앞 석등과 국보 제45호인 소조여래좌상, 국보 제46호인 조사당벽화, 보물 제249호인 삼층석탑, 보물 제255호인 당간지주, 보물 제735호인 고려각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인 원융국사비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의상이 주석해 화엄사상을 닦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사찰이다. 의상의 손제자인 신림 이후 9세기에 들어서는 '대덕'(大德) 호칭을 받은 법사를 많이 배출했다.

선종 구산 가운데 동리산파의 개조인 혜철(785~861)이 800년부터 7년 동안 머물렀고 성주산파의 무염(800~888)도 820년 무렵에 여러 해 머물다 당나라로 유학갔으며, 문경 봉암사의 창건주인 희양산파의 개조 도헌(824~882)은 9세에 출가, 17세에 계를 받을 때까지 부석사에서 공부했다. 사자산파 도융의 제자인 절중(826~900)도 15세에 부석사에 와서 화엄경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는 원융대덕(圓融大德'964~1053)이 주석해 대장경을 찍었는데, 그 경판이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고려 말에 이르러 공민왕 때는 국사로 봉해진 진각국사 원응(圓應'1307~1382)이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조사당을 중건했다.

성종 21년(1490)에 조사당을 중수하고 1493년에는 단청했다. 1555년에 소실된 안양루는 20년 뒤인 1576년에 중건했고 범종각도 1746년 불탄 것을 곧바로 다시 지었다.

'순흥읍지'에는 무량수전, 조사당 외에 취원루, 그 북쪽에 장향대, 무량수전 동쪽에 상승당, 안양문 앞에 법당'선당'승당과 종각 아래에 당우가 대여섯 채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려시대 건축물로 현존하는 목조건축물의 시조격인 무량수전과 조사당을 1916년 해체'수리했고 무량수전 서쪽에 있던 취원루를 동쪽으로 옮겨 취현암으로 이름을 다시 붙였다. 1977년부터 1980년까지 전체 사역을 정비하면서 일주문과 천왕문, 승당 등을 새로 지었으며, 1996년 초에 유물각을 개수, 유물전시각으로 꾸몄다.

이 외에도 부석사에는 9세기 때 쌓았다는 대석단과 함께 아름다운 석물이 많다. 무량수전 앞의 석등은 균형미에 장식미를 더한, 뺄 것도 보탤 것도 없는 아름다운 석등이다. 절 초입에는 당간지주가 있고 무량수전 마당 동쪽에는 균형미를 갖춘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경내에는 1967년 인근 동쪽 골짜기의 옛 절터에서 옮겨온 삼층석탑 한 쌍과 비로자나불,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고려시대 대표적인 유물은 무량수전에 모신 소조아미타여래좌상이며, 조사당에 있던 14세기 고려시대 벽화는 유물전시각에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고려대장경 각판도 귀중한 유물이다.

부석사는 오랜 창건 역사만큼이나 숨은 이야기가 많다. 부석사를 방문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 '浮石寺'(부석사)를 바꾼 이야기, 의상조사와 선묘 아가씨에 얽힌 사랑 이야기, 석룡으로 변한 선묘 아가씨 이야기, 극락세계에 숨은 부처 '공포불' 이야기 등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무섬전통마을

영주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무섬전통마을은 안동의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 영월의 선암마을과 청령포처럼 마을의 삼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는 대표적인 물돌이 마을이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과 영주 서천이 만나 태백산과 소백산 줄기를 끼고 마을의 삼면을 감싸듯 휘감고 돌아 마치 육지 속의 섬처럼 보인다. 강변에는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그 건너편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어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반남 박씨와 선성(예안) 김씨의 집성촌인 이곳은 영주에서 알아주는 반촌(班村)으로, 고색창연한 50여 채의 고가가 자리하고 있어 번잡한 도심을 떠난 도시인들이 맘을 내려놓고 수양할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다.

무섬마을은 경북도 민속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된 해우당과 제93호인 만죽재가 자리하고 있다. 해우당은 19세기 말 의금부 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이 지은 집이다. 해우당 고택의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글씨로 전해지고 있다. 만죽재는 반남 박씨의 입향조인 박수가 1666년(헌종 7) 지은 집으로 무섬마을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가장 오래된 한옥이다.

무섬마을에는 350여 년간 무섬마을과 강 건너를 연결시켜준 외나무다리가 있다. 1979년 수도교가 놓이기까지 무섬마을의 유일한 통로였다. 길이 150m, 폭은 30㎝에 불과한 이 외나무다리는 최근 현대인들에게 다시 주목받는 관광상품이다. 이 마을은 매년 외나무다리 축제와 무섬 블루스 뮤직페스티벌을 개최해 관광객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관광의 별' 소백산자락길

영주의 힐링 관광명소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된 소백산 자락길이다.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생태관광부문에서 한국 최고의 관광지인 '한국관광의 별'을 수상한 소백산 자락길은 모두 12자락으로 나뉘어 있다.

1자락길(선비길'구곡길'달밭길)은 소수서원을 시작해 죽계구곡, 초암사를 거쳐 삼가리까지 이어지는 13㎞ 구간이다. 2자락길(학교길'승지길'방찬길)은 삼가주차장에서 금계바위를 지나 소백산역까지 이어지는 16㎞ 구간이다.

3자락길(죽령옛길'용부원길'장림말길)은 소백산역에서 시작해 죽령주막을 지나 단양군 대강면으로 이어지는 11㎞ 구간이다. 3자락길 중 죽령옛길은 소백산역(희방사역)을 출발해 죽령주막까지 이어지는 2.8㎞ 구간으로, 그 옛날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선비들과 보부상이 넘던 길로 유명하다.

이 같은 자락길은 충북 단양군을 지나 봉화군 오전약수탕관광지를 거쳐 10자락길부터 다시 영주로 이어진다. 소백산 자락길은 모두 12자락 약 158㎞에 달한다.

영주시는 생태관광 10대 모델사업에 선정된 소백산자락길 생태자원의 효율적 개발과 힐링관광 기반조성에 힘쓰고 있다. 소백산 자락길에 지금까지 26억원을 들여 여우생태학습장과 생태탐방로 복원 및 정비, 체험프로그램 운영 등을 해 오고 있다. 소백산국립공원은 잣나무 숲길 명상치유프로그램을 운영, 자살예방과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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