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대 국회는 역대 최악 소리를 들었다. '하기로 했다'는 일은 많았는데 실제로 '했다'는 일이 많지 않아서다. 발의한 법안은 역대 가장 많았지만 처리율은 역대 최저였다. 1만7천822건을 발의해 놓고선 7천441건만 입법했다. 42%만 처리해 14대 국회 때 81%의 절반 수준이고, 17대 50%, 19대 44%보다도 더 못했다. 1만381건의 법안이 립서비스에 그쳤다.
국회의원들이 여론에 떠밀려 '하기로 했다'가 여론이 숙지면 슬며시 꼬리를 내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요즘 국회에서 논란인 불체포특권이 대표적이다. 불체포특권이란 현행 범인이 아닌 한 국회의원이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 권리다. 현행 국회법은 '의원 체포 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된 후 72시간 내에 표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자동 폐기'하도록 했다. 국회가 사흘만 처리를 미루면 국회의원 체포는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이다.
이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 야당 의원들에게 꼭 필요한 제도였다. 덕분에 정권의 서슬에 굴하지 않고 구속 위협에서 벗어나 정권의 부패와 비리를 고발할 수 있었다. 오늘날 이는 변했다. 자유의 상징이 아닌 뇌물을 받거나 비리에 연루된 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했다. 방탄 국회의 탄생이다.
최근 여야가 특권 내려놓기의 상징으로 이 조항을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는 19대 국회의 데자뷰일 뿐이다. 새누리당은 19대 국회 개원 후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기로 하고선 흐지부지한 전과가 있다. 국회의원들에게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 '하기로 했다'던 것도 그렇고, 세비를 '줄이기로 했다'던 국회의원 수당 법 개정도 마찬가지다. 새누리당이 무노동 무임금을 약속하자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은 세비를 30% 삭감하겠다며 맞불을 놨지만, '무노동 무임금'도, '세비 30% 삭감'도 없던 일이 됐다. 민주당 박남춘 의원 등이 국회의원 본인 및 배우자의 4촌 이내 친인척 채용을 금지하는 쪽으로 국회법을 개정하기로 했던 것도 똑같다.
20대 국회는 19대 국회를 닮았다. 개원 한 달여 만에 여야가 앞다퉈 특권 내려놓기 경쟁을 펼치고 있는 점이 닮았다. 이들이 내려놓겠다는 특권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과거 의원들이 내려놓겠다던 것들의 재탕, 삼탕이다. '하기로 했다'가 하지 않는 것까지 닮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새로운 것이 있다면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새누리당 강효상 의원이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법)상 국회의원의 '로비'를 예외로 인정한 조항을 삭제하는 법 개정을 하겠다는 정도다. 그렇지만 이 또한 '하기로 했다'는 것이지 '했다'는 것은 아니다. 이 또한 지켜봐야 안다.
최근 KBS가 '시사 기획 창'을 통해 소개한 덴마크 국회의원들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덴마크 의원의 3분의 1은 자전거를 타고 등원하고, 나머지 의원들은 소형차를 직접 몰고 등원한다. 의원 두 명이 1명의 비서를 두고 사무실을 공유한다. 하루 평균 12시간씩 일하면서도 가져가는 것은 국민소득 평균치에 맞먹는 월 800만~900만원 선의 기본급뿐이다. 의원 누구도 특권을 누릴 생각도 없고 특권 의식도 없다. 세상에서 가장 국민들이 행복하게 산다고 느낀다는 덴마크 국회의 본 모습이다. 덴마크라면 올해 유엔이 발표한 '2016 세계 행복 보고서'에서 국가 행복지수 1위에 오른 나라다.
국민과 더불어 살며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하는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는 덴마크와 대다수 국민이 정쟁만 일삼고 자기 이익만 취한다 하여 '국×의원'이라고 욕하는 우리나라의 국회의원을 비교하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어떤 국회를 지향해야 하는지는 분명해 보인다.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국회상은 국회의원들이 이런저런 '특권을 내려놓기로 했다'고 떠드는 데 있지 않고 진정 모든 특권과 특권 의식을 내려놓았을 때, 그때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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