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醫窓)] J양의 편지

지난 4월 외래 진료실에 온 J양이 쇼핑백과 편지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살아서 지난주에 첫 월급을 받았어요.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주신 선생님께 드리는 감사의 마음입니다"라고 했다. J양을 처음 접한 건 그가 중학교 2학년이던 14살 때였다. 소아외과에서 간 이식이 가능할지 의뢰를 받고 병실로 찾아갔을 때, 그는 얼굴과 눈이 노랗고 피부는 탄력을 잃은 채 축 늘어져 누워 있었다. 눈빛도 초점을 잃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의무기록을 살펴보니 그는 태어날 때부터 황달이 있었다. 황달은 점점 악화됐고, 선천성 담도폐쇄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생후 2개월을 넘겨 간 밖의 담관은 절제하고 간에서 담즙이 흘러나오는 입구에 소장을 심어 놓고 기다리는 '카사이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담즙이 조금씩 흘러내려 황달이 차츰 호전됐고 위기에서 벗어났다. 일곱 살 때는 간내담관낭에 농양이 생겨 담관낭과 소장을 연결하는 수술을 또 받았다.

학동기에는 그런대로 잘 성장하다가 중학생이 되어 심각한 문제에 부닥쳤다. 담즙은 마르고 간은 굳어 간부전증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간이식 외에는 회생할 길이 없었다. 맞벌이를 하는 어머니는 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아 "살릴 수 있는 길이라면 간이식이든 뭐든 다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날로 뇌사자 간이식 등록을 했다. 한 달이 넘어가면서 아이는 혼수상태가 됐고, 절망적인 순간에 뇌사자가 발생해 간이식 수혜자로 배정을 받았다. 중학생 3명이 타고 달리던 오토바이가 전봇대를 들이받아 맨 앞에 타고 있던 중학교 1학년 학생이 뇌사에 빠진 사고였다. 한 사람의 가장 큰 불행이 다른 한 사람에겐 가장 큰 행복이 되는 역설이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수술은 대단히 어려웠다. 어릴 적 두 차례 수술로 간과 소장이 주변과 단단히 유착된 상태였다. 병든 간을 떼어내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사고사를 당한 소년의 건강한 간이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물러설 수가 없었다. 마침내 병든 간을 적출하고 새 간을 이어 붙였다. 10시간이 넘는 대수술이지만 무사히 마무리됐다. 힘들었던 수술과 달리 J양은 하루가 다르게 회복해 한 달 만에 퇴원했다. 한 해 늦었지만 J양은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대학에서 유아교육과를 전공하고 유치원 교사로 취직, 첫 월급을 받은 것이다.

연구실로 돌아와서 편지를 펼쳐보았다. "세월이 흘러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유치원 교사가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너무도 무섭고 고통스러운 하루의 연속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과 부모님께서 제 손을 놓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신 덕분에 남들과 조금 다른 특별하고 더욱 소중한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동안 과정이 주마간산처럼 지나갔다. 왈칵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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