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世事萬語] 어리석은 참모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에게는 루이 하우라는 뛰어난 참모가 있었다. 하우는 왜소한 체구를 지녔지만, 정세를 꿰뚫는 날카로운 직관력과 남다른 강단을 갖춘 인물이었다. 그는 루스벨트가 하나의 구상을 내놓으면 그 허점을 조목조목 짚어내어 비판하면서 더 좋은 내용으로 구체화하도록 했다. 심지어 그는 직설적이고 독설가이기도 해서 루스벨트와 언쟁을 벌이다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하우는 루스벨트에게 끊임없이 '노'라고 말했고 루스벨트는 하우의 말을 고깝게 듣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성공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터키의 2대 대통령 무스타파 이스메트 이뇌뉘는 국부로 추앙받는 케말 아타튀르크 정권의 2인자였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 여러 차례 총리를 역임하면서 정기적으로 아타튀르크와 만나 소신을 밝히며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때로는 언성이 높아져 밖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아타튀르크는 강직한 이뇌뉘의 의견을 경청함으로써 자신이 오류에 빠지거나 독선적인 지도자가 되는 것을 경계했다. 의견 충돌이 있을 때마다 이뇌뉘는 사직 의사를 전했고 아타튀르크는 계속 일해달라고 격려하면서 관계를 이어 나갔다. 참모가 적극적으로 의견을 말하게 하고 그것을 받아들였던 것이 아타튀르크가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는 데 한몫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재직할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언론 통제를 가했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KBS의 관련 보도 내용이 맞지 않는다며 뉴스 편집에서 빼 달라거나 다시 녹음해서 만들어 달라고 하면서 "하필이면 오늘 KBS를 봤으니 내용을 바꿔 달라"고 하는 녹취록이 공개됐다. 뉴스를 봤다는 인물은 말의 맥락상 대통령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의원은 이에 대해 외압이 아니라 부탁이었고 홍보수석으로서 통상적인 업무를 수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과 새누리당 친박 의원들도 이 의원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이 의원과 그에 동조하는 이들의 변명은 매우 뻔뻔하게 들린다. 언론사의 보도 내용에 간섭하는 자체가 외압이다. 이 의원은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는 데만 골몰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돌아보려 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만 쳐다보는 이 의원이 새누리당 대표 경선에 나서려고 한다니 기가 막힌다. 박근혜 정권은 MBC 사태가 일어난 이명박 정권에 이어 민주주의를 퇴행시켰다. 쓴소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지도자와 직언할 줄 모르는 참모가 빚어낸, 서글픈 현실이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