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에 치러질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선거는 당락을 떠나 트럼프가 주인공이다. 여전히 다수파는 '그래도 힐러리'라며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낙승을 예상하고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소수파들은 트럼프의 역전승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트럼프 현상'에 주목하라고 한다. 트럼프가 내건 것이 '미국 우선주의'다. 세계의 경찰 노릇하면서 폼 잡는 일은 그만두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당장 주한미군 주둔과 분담금 문제가 걸린 우리나라는 긴장 모드다. 트럼프 경계령이다.
그와 비슷한 일이 지난달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투표를 코앞에 둔 영국에서 있었다. 브렉시트 반대 운동에 열심이던 조 콕스 영국 노동당 의원이 총을 맞고 칼에 찔려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의 범인이 외친 구호도 '영국이 먼저'였다. 트럼프와 닮은꼴이어서 놀랍다.
세계의 우려와 걱정이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국민들은 '사고'를 쳤다. 43년간 이어온 유럽과의 동거생활 청산이자 유럽의 일원이 아닌, 대영제국이 아닌, 소 잉글랜드로의 독립 내지 고립 선언이다. 그러나 이번 영국의 고립 결정은 지금까지의 우아한 고립이나 우월적인 고립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희생이 뒤따르는 고립이 될 공산이 크다. 영국과 관련된 각종 지표들이 일제히 비관적인 방향으로 돌아선 게 이를 방증한다.
세계의 언론들은 영국의 이런 결정이 포퓰리스트 정치인의 탓이라며 그들을 마녀사냥식으로 때려잡기 시작했다.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과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 대표가 그 대상이다.
이들은 브렉시트를 주장하며 세대별, 지역별, 인종별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영국 국민들의 아프고 약한 곳을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선동이고 호도였다. 뒷감당은 오롯이 영국 국민들 몫이다.
트럼프와 존슨의 선전(善戰)과 득세를 그들 개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뛰어난 선동과 연설에만 매를 들어서도 안 된다. 포퓰리즘으로 단정 짓고 난도질을 한다고 끝이 아니다. 이들이 활개치고 다닐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준 환경이 잘못이다. 모순이 누적되고, 갈등은 커지고, 구성원들의 불만이 쌓이고,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 현실이 트럼프를 키우고 존슨을 불러온 것이다.
브렉시트를 보면서 우리나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말이다. 모순 덩어리의 나라라는 이유에서다. 다민족국가도 아닌데 갈등 구조는 더 중층적이고 더 복잡하게 꼬여 있다. 게다가 미국이나 영국에는 없는 것들도 많다.
무엇보다 우리는 분단국가다. 동족상잔의 비극도 모자라 60년 넘게 총부리를 겨누고 대치 중이다. 분단이 대한민국 모든 갈등의 뿌리라고 할 만큼 크다는 점에는 이의를 달 수 없다. 또 다른 나라에 있는 갈등과 모순은 거의 다 있다. 지역별 갈등, 빈부 갈등은 이미 다 아는 바다. 돈과 권력에 대한 경외감이 아닌 경멸감을 우리만큼 갖고 있는 국민도 드물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당연한 결과다. 몇만원에도 벌벌 떠는 서민들의 눈과 귀에 있는 사람, 가진 사람들의 수십억, 수백억이 제대로 들어올 리 없다. 브렉시트에서 여실히 나타난 세대별 갈등도 영국 못지않다. 헬조선에 동조하는 청년들이 90%라는 믿기지 않는 통계도 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우리나라'라는 생각보다 '남의 나라', '너희들 나라'라고 생각하는 층들이 늘어가는 것도 이변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다.
한국판 트럼프, 존슨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미리 경계하지 않으면 내년 대선은 그들의 데뷔 무대가 될 가능성도 높다. 이들이 출현하고 난 뒤라면 늦다. 브렉시트가 현실이 되고 난 뒤 존슨과 패라지를 응징한다고 투표 결과를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저들의 선전과 선동이 사실이 아닌 게 증명이 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