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권리장전

2010년 영국 왕립조폐국이 액면가 5파운드 기념주화를 발행했다. 이 은화의 앞면에 왕관과 'Res toration of the Monarchy'(왕정복고), 1660을 새겨 넣었다. 뒷면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을 담았다. 청교도혁명으로 영국 의회가 권력을 쥔 11년간의 공화정이 끝나고 스튜어트 왕가가 왕권을 되찾은 왕정복고 350주년을 기념하는 동전이었다.

이 역사적 사건은 1658년 올리버 크롬웰의 죽음이 배경이다. 의회를 이끌던 크롬웰이 죽자 영국은 혼란에 빠졌다. 수습책으로 의회가 선택한 것이 바로 왕정으로의 복귀였다. 반역죄로 처형된 찰스 1세의 아들을 프랑스에서 귀국시켜 찰스 2세로 추대했다. 종교적 관용과 사유재산권 보장 등을 수용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가톨릭에 치우치고 전제 정치를 편 찰스와 그 동생 제임스 2세는 의회와 대립하다 1688년 명예혁명 때 다시 왕위에서 쫓겨났다.

이듬해 소집된 국민협의회는 제임스의 딸 메리와 사위 오렌지 공작을 국왕으로 추대하면서 '이제까지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고 주장하기 위하여'라는 권리선언을 제출해 과도한 왕권에 못을 박았다. 이 선언을 기초로 만든 것이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선언하고 왕위 계승을 정하는 법률' 즉 권리장전(權利章典)이다.

영국 권리장전은 과세 등 국왕의 모든 국가 행위 시 의회 동의를 받도록 규정했다. 선거의 자유와 국민청원권, 의회 발언의 자유, 의원 면책특권 등도 담았다. 이 의회 제정법은 왕권 견제와 권력 분산 등 절대주의 종식에 큰 몫을 했다. 세계 헌정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법률이다.

권리장전에서 출발한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놓고 지금 여야가 충돌을 벌이고 있다. 야당은 권력 견제를 위해 면책특권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새누리당은 이를 제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폐지하든 보완하든 손을 보는 게 맞다는 것이 국민 정서다.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의회의 권리 규정도 이제는 낡은 틀이라고 보는 것이다.

영국이 왕정복고 기념주화를 발행한 것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국민의 권리와 자유, 의회의 역할 등 왕정복고가 남긴 역사적 교훈과 가치를 되새기자는 뜻이다. 결국 권리장전이라는 혁신적인 틀을 낡게 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뒤처진 시대정신과 때묻은 특권 의식 탓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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