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이 하나만을 알지요. 세상을 향해 나를 열어두는 한 앞으로도 무수히 살을 베이게 되리라는 것. 지금껏 그래 왔던 것보다 더더욱. 그리고 혼신으로 삶을 끌어안아도 무엇도 나에게 머무르지 않고 나를 투과해갈 뿐이라는…. 그렇지요. 삶이란 생과 죽음이 등을 꽉 맞대고 한 몸처럼 걸어가고 남자와 여자가 한 몸처럼 걸어가는 길이듯 현실과 환상이 한 몸처럼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길이라는 것. 아니 이 완강한 환상 역시 하나의 절박한 현실이라는 것.(윤효 '삼십 세' 부분)
잉게보르흐 바흐만이 쓴 '삼십 세'는 '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더 이상 젊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으리라'는 표현으로 시작된다. 윤효도 바흐만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삼십 세'를 소설로 썼다. 2003년, '서른 살의 강'이란 소설집 속에서 이 소설을 만났으니 나도 그때는 삼십 대였다. 누군가는 서른 살이라는 말이 서럽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면 마흔은? 쉰은? 자꾸 이런 생각을 하니 정말 쓸쓸해졌다. 가수 김광석은 특유의 담담한 목소리로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하루가 멀어져 간다고 노래했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모두들 떠나간다고도 했다.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니 더 쓸쓸해졌다. 부재(不在)라는 것은 결국 망가진 욕망 그 자체니까 말이다. 이미 그 나이도 훌쩍 지나버린 지금 난 어떤 욕망을 담고 살아갈까. 여전히 난 말에 대한 욕망이 크다. '나'를 누설해보고 싶다는 욕망 말이다. 그 욕망이 어떤 풍경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확신은 없다. 하지만 내 속에 가득 고여서 출구를 더듬거리는 욕망의 본질은 여전히 내 삶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이따금 서른 살의 상처들이 재생되면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류가 되어 흐를 때가 있다. 상처란 놈은 내 기억이 남긴 흔적이다. 기억은 오랜 시간 저장되기도 하고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삭제되기도 한다. 하지만 삭제된다고 해서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컴퓨터에서조차 'Delete'가 모든 기억을 지우지 못한다. 인간의 기억은 더욱 집요하다. 기쁨의 기억은 그리 오래 저장되지 않는데 슬픔은 더욱 무겁다. 웃음은 위로 올라가 증발되는 성질을 가졌지만 슬픔은 밑으로 가라앉아 앙금으로 남는다는 말이 그럴듯하다. 수없이 슬픔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해도 쉽게 슬픔은 놓아주지 않는다. 아마도 앙금으로 가라앉아 있기 때문일 게다.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가라앉아 있다가 계절이, 사람이 만드는 풍경으로 인해 살아난다. 살아오면서 많은 상처 속에서 산다. 내가 주는 상처가 내가 받는 상처와 만나면서 대체로 슬픔으로 외부에 드러나곤 했다. 내가 타인에게 준 상처보다 내가 받은 상처에 민감한 것도 보편적인 일이다. 자신에게 관대한 것이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넘어서는 방법은 하나. 내 상처로 타인의 상처를 품는 것. 스무 살 적의 흠집 없는 허상들을 내어주고 얻은, 삶에 흠씬 난타당한 후의 피로가 만들어준 부드러움. 잃어야 얻을 수 있다는 가혹한 타산. 다르다는 것이 틀리다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면 상처를 받는 것은 인간의 섭리이다. 더 드러낼수록 상처를 받는 것이 삶의 섭리이다. 하지만 그렇다. 우리 내면의 본질에는 그 상처를 확인하며 공유하고 싶다는 욕망과 그 누구에게도 그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공존한다. 그렇게 두 욕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걸어가는 그것이 삶이다. 그럼 나의 선택은 어디에 있을까? 드러내든 숨기든 상처는 여전히 상처로 존재한다. 말은 일정 부분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 단순히 상처로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여운을 남겨 치유의 빛을 추스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난 끊임없이 타인에게 말 걸기를 시도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제는 안다. 세상을 향해 나를 열어두는 한 앞으로도 무수히 살을 베이게 되리라는 것. 혼신으로 삶을 끌어안아도 무엇도 나에게 머무르지 않고 나를 투과해갈 뿐이라는 것. 지금 주어진 절박한 현실도 완강한 환상이며 완강한 환상도 결국 절박한 현실이라는 것.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풍경에 대해 이제는 편안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윤효의 '삼십 세'는 그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고서이다. 더 슬픈 것은 그때의 나와는 달리 지금의 삼십 세들은 그럴 겨를조차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래서 더욱 서러운 서른 살이라는 것. 힘내라, 서른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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