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대에서 강창교를 지나면 왼쪽으로 야트막한 산을 하나 만난다. 높이가 200m가 채 안 되는 아담한 산. 행정명으로는 '죽곡산'이고 일반인들에게는 '모암봉'으로 알려져 있다. 카페나 블로그를 뒤져봐도 산행기 하나 제대로 없는 변두리 무명산이다.
그동안 '익명의 산'으로 알고 무심히 올랐는데 한 사이트에서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황학지맥(黃鶴枝脈)의 맥을 받은 '족보' 있는 산이라는 것이었다. 칠곡 가산에서 산맥을 일으킨 황학지맥은 다시 남쪽으로 맥을 뻗친다. 30여 개 산, 봉, 령을 거쳐 50여 리를 내려온 지맥은 낙동강을 만나 그 맥을 다하는데 바로 그 마지막 봉우리가 모암봉이다. 황학지맥의 종점 모암봉으로 올라보자.
◆모암봉 일대 대규모 삼국시대 성터
모암봉 8부 능선엔 동서로 길게 뻗은 산성이 있다. 삼국시대 산성인 '죽곡산성'이다. 죽곡은 우리말로 풀면 '대실'인데 이 지명과 관련된 얘기들이 전해진다. 5세기 무렵 신라는 이곳에 산성을 쌓고 가야와 대치했다. 전쟁 때 쓸 화살을 만들기 위해 산에 대나무를 심었는데 죽곡(竹谷), 대실이란 말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당시 다사, 문양 일대에는 상당히 큰 정치 세력이 존재했었다. 신라처럼 국가 단계로 발전하지 못하고 부족, 성읍(城邑)단계에서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시기별로는 화원 성산리, 불로동 고분군, 봉무동 고분군들과 연대를 같이한다.
1993년 대구대박물관에 의해 문양리 고분군이 발굴됐을 때 규모와 부장품의 성격에서 학계를 놀라게 했다. 1호분의 크기가 남북 39m, 동서 32m에 이르는 초대형이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불로동의 대형고분과도 맞먹는 크기여서 당시 이 지역에 상당한 정치 세력이 존재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영남문화재연구원 수장고엔 당시에 발굴된 '환두대도' 등이 복원 작업을 기다리고 있다.
◆모암봉 오르면 금호강'낙동강 한눈에
모암봉이란 명칭은 옛 문헌 어디를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지명에 관한 사료를 살펴보면 이 산은 예로부터 죽곡산, 죽박산(죽바위산), 취모봉, 연화봉(蓮花峰)으로 불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암봉으로 오르는 산행 들머리는 다양하다. 일부 블로그에는 다사역에서 내려 강창삼산타운을 거쳐 오는 코스를 소개하기도 하는데 길 찾기가 번거로워 권하고 싶지 않다. 대신 대실역에서 내려 산 밑으로 접근해 아무 등산로나 잡아 오르면 모암봉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카메라를 메고 모암봉으로 오르는 길. 길옆엔 성하(盛夏)의 신록이 더위를 씻어낸다. 30분 정도 계단과 데크를 따라 정상에 오르니 계명대 뒷산 궁산과 그 밑을 돌아나가는 금호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구의 북동쪽을 휘감으며 돌아나가는 금호강은 대구의 고대사를 논할 때 언제나 그 중심에 선다. 문명과 문명을 이어주던 교통로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선사시대 북방계 청동기, 철기문화는 금호강, 낙동강을 거쳐 남해, 일본으로 흘러갔다. 거꾸로 남해, 일본의 해양문화가 대륙과 통하는 길목이기도 했다. 고대 낙동강, 금호강 수운(水運)이 활성화됐을 때 정어리, 꽁치와 돔배기를 실어 나르던 옛 가야와 달구벌국의 어선들이 연암산 밑까지 드나들었다고 한다.
◆5, 6세기 신라와 가야 긴장 서린 강정대
모암봉에서 목가적 풍경을 맘껏 감상하고 남쪽에 있는 강정대로 향한다. 경기도 양수리에 남한강,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있다면 대구에는 강정대가 있다. 낙동강'금호강 장강의 물결은 바로 강정대 앞에서 합수(合水)를 한다. 고대 문화의 터전이었던 두 강이 한 지점에서 합쳐진다는 것은 두 문화의 만남을 뜻한다. 강을 기반으로 문화를 이루었던 대륙문화, 해양문화가 이 강줄기에서 만나 교류를 열어갔던 것이다.
문명 교류의 장으로서의 강, 이건 어디까지나 평화스러울 때에만 가능했던 일이었고 이 강에 전운이 몰아치면 강은 피비린내나는 살육의 장이 되기도 한다.
강정대에 한바탕 피바람이 인 건 5, 6세기 무렵. 당시 신라와 가야는 한반도 남부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시기였다. 그 무렵 달구벌, 성산리, 문양리, 불로동에는 정치 세력들이 있었다. 5세기 무렵 이들은 모두 경주에서 세력을 키운 신라의 영향력하에 놓이게 된다. 신라와 가야는 건곤일척의 결전을 벌이는데 격전지 중 한 곳이 바로 이 강정대 앞 낙동강, 금호강 유역이었다. 이 시기 대부분의 산성(성산리, 문양리, 죽곡)들이 모두 하안(河岸)에 집결되는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역사 현장엔 원색의 등산복 물결
대실 조그만 뒷산에 이런 역사적 비밀이 숨어 있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 모암봉 정상석 근처 두물머리에 서면 남쪽으로 화원유원지가 보인다. 이곳 역시 5, 6세기 신라 초병들이 강 건너 가야의 진영을 마주 보며 번(番)을 서던 전초 기지였다.
죽곡산과 낙동강 강정보는 등산로로 연결된다. 강정대 밑으로 향하는 산책로로 접어들어 20분 남짓 걸으면 강변에 이른다.
현재 이 강가에선 원색의 자전거 물결이 바삐 남북으로 오가고 강정대엔 더위를 피해 올라선 등산객들이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지금은 이렇듯 평화로운 일상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지만, 1천500년 전 이 강둑은 잔뜩 긴장한 병정이 강안을 노려보던 긴장의 장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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