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 通] 민간도서관 27년 '집념' 신남희 새벗도서관장

"책 속에 꿈·희망 있는데…학원에 매여 사는 요즘 아이들 안타까워요"

신남희 관장은 새벗도서관이 민간도서관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27년 동안 후원해준 시민
신남희 관장은 새벗도서관이 민간도서관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27년 동안 후원해준 시민'독지가 여러분 덕분이라고 강조한다. 정운철 기자 woon@msnet.co.kr

지식발전소, 정보충전소. 도서관은 인류의 지혜가 집약되는 곳이다. 누군가의 홍채에 인식된 텍스트는 오랜 숙성 시간을 거쳐 지혜로 연륜으로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도서관 하면 대형 서가에 근엄한 사서(司書), 면학 같은 딱딱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슬리퍼 차림으로 가볍게 들르는 마을 도서관도 있다. '동네 사랑방 같은 도서관'을 지향하며 27년간 마을 도서관을 운영해온 여성이 있다. 대구시 상인동 새벗도서관의 신남희 관장이다.

1989년 전세금 500만원을 털어 시작한 사업은 이제 장서 7만 권의 '대형 도서관'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에서 민간도서관 역사를 논할 때 당당히 '목차'에 등장한다고 한다. 여름방학을 맞아 학생, 시민 프로그램 준비에 분주한 신 관장을 만나봤다.

◆정권'교육정책 따라 도서관 흥행 좌우

인터뷰 중 한 무리의 아이들이 도서관으로 바람처럼 몰려 들어왔다. 아이들은 서가로 뛰어가 동화며 만화를 한 아름씩 안고 나와 마룻바닥에 엎드린 채 독서에 빠져들었다.

"정말 예쁘죠. 아이들이 저렇게 책에 빠져들다가 무언가에 꽂히면 그게 아이들의 꿈이 되고 희망이 되어야 하는데 시험 때문에 저런 시간이 후순위로 밀리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신 관장은 학원에 매여 사는 요즘 아이들이 정말 딱하지만 정책, 제도가 하는 일을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럽다고 말한다. 입시'경쟁 위주 정책 탓에 지금은 학생 이용자 수가 많이 줄어들고 있는 상태. 도서관의 '흥행'을 결정하는 건 뜻밖에 국가의 교육정책이었다. "영어, 수학이 강조되면 아이들이 과외나 강습소로 몰려요. 반대로 논술, 글쓰기, 토론이 강조되면 도서관엔 학생들로 북적거립니다."

정권에 따라서도 도서관은 그 위상에 있어 미세한 온도 차가 감지된다고 한다. 자율, 인성, 전인(全人)교육이 강조되는 정부에서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도서관을 찾게 되고 성적이 강조되는 정부에서는 도서관 이용 '성적'도 내리막을 향한다는 것이다.

◆전세금 500만원 털어 봉산동에 개관

"여고 때 전 반항아였어요. 밤늦게 콩나물시루 교실에서 자습을 하면서 '이건 아닌데, 이 옷은 나에게 맞지 않아' 항상 사회에 날을 세웠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시내 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신 관장이 '편한 길'을 뿌리치고 광야로 나온 건 1989년.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금을 들고 중구 봉산동 49㎡(15평) 공간에 도서관을 열면서부터다. 당시 학교에서는 전교조 사태로 아이들의 가치관이 혼란스러웠던 시절. 자신도 고교 시절 성장통을 앓았기에 아이들을 언니처럼 선배처럼 위로해 주었다.

도서관이 만남, 소통의 장으로 인기를 끌면서 학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급히 자금을 마련해 1993년 중구 남일동으로 이사를 했다. 공간에 여유가 생기자 신 관장은 도서관을 책 읽는 공간 이상의 무언가로 만들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학생들은 물론 일반시민들까지 사회 현상에 대한 궁금증, 지적 호기심이 왕성해졌어요. 이때부터 인문학 강좌, 영화제, 독서토론회 같은 동아리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갔습니다."

이 시기에 여고생으로 독서모임에 참여했던 이재정(변호사) 씨는 경북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을 거쳐 현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비례대표)이 됐고 사회참여에 적극적이었던 까까머리 안수찬 학생은 현재 한겨레21 편집장이 되었다.

도심 공동화가 심해지면서 시내 운영이 힘들어지자 도서관은 달서구 이곡동으로 옮겨갔다. 도서관 운영도 운영이지만 5번이 넘는 이사를 거치면서 그는 거의 이사 노이로제에 걸려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 관장은 독지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된다. "제가 다른 도움은 드릴 수 없지만 '이사 노역'에서만큼은 벗어나게 해드리겠습니다." 이 익명의 독지가 덕에 새벗도서관은 2006년부터 상인동 시대를 열어갈 수 있었다.

◆대구에서 일군 작은 도서관의 기적

신 관장이 도서관 사업에 뛰어들 무렵 전국적으로 '사설 도서관' 열풍이 불었다. YS 집권 이후 사회 전반에 민주화 훈풍이 불며 시민들의 사회참여 의식이 높아지고 시민단체, 모임이 활성화되었다. 전국적으로 수십 군데 사설도서관이 생겨나고 새로 개관을 준비하는 곳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 단체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독서 문화 자체가 퇴색한 것이 가장 크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도서관장 하면 무언가 있어 보이잖아요. 폼도 나고. 이렇게 환상을 가지고 시작했던 분들이 자금난, 인력난에 빠지자 다 문을 닫아버린 거죠. 아마 30년 가까이 민간도서관이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여기가 유일할 겁니다."

대구에서 일군 작은 도서관의 기적, 여기에는 당연히 영광과 보상도 따라주었다. 새벗도서관은 1998년 '도서관 독서문화진흥'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여기에는 전국 최초로 '민간도서관 조례'를 제정하면서까지 재정 도움을 준 대구시'시의회, 출범 당시부터 푼돈을 쪼개 후원해 준 시민 수백 명의 도움이 있었다.

◆학생'시민 대상 프로그램 운영 중

여름, 특히 여름방학은 도서관에서 제일 바쁜 시즌이다. 시민, 학생 프로그램이 이 시기에 집중된다. 새벗도서관에서는 초등학생, 주부, 시민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얘들아 숲에서 놀자'는 아이들과 함께 앞산을 찾아 풀, 숲, 곤충, 버섯, 땅속 생물, 생태계를 관찰하는 행사다. 올해 처음으로 시작하는 '연극놀이로 만나는 삼국유사'도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초교 저학년생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교실'은 매년 조기 마감을 자랑한다. 특히 기호석 선생이 담임을 맡으면서 꼬마 팬클럽까지 생겨났다.

시민을 대상으로 '서정홍 시인과 함께하는 글쓰기' '화가 최수환의 시선으로 다시 보는 한국 미술'도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주부들이 주 대상이지만 문학, 미술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도 찾아온다.

시민 및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길 위의 인문학'은 새벗을 대표하는 프로그램. 한국의 대표시인'작가의 고향 방문을 통해 문인들의 삶의 자취를 더듬는다. 5월 신동엽 시인, 6월 백석 시인 생가 답사에 이어 8월부터 본격 인문학 강좌가 열린다. 강의가 끝나면 이청준 생가 방문 등 답사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신 관장은 "몇몇 문화공연단체, 협동조합의 협조와 재능기부 덕분에 프로그램들이 활성화되었다"며 "학생들을 프로그램에 보내주는 것도 좋지만 엄마가 함께 참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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