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구경
곽예
연꽃 보러 세 번이나 연못을 찾아가니
푸른 잎, 붉은 꽃은 옛날과 같건마는
꽃을 보는 옥당의 늙어빠진 이 사람은
풍정은 그대로인데 머리털은 백발일세
賞蓮三度到三池(상연삼도도삼지)
翠蓋紅粧似舊時(취개홍장사구시)
唯有看花玉堂老(유유간화옥당노)
風情不減鬢如絲(풍정불감빈여사)
*원제: [賞蓮(상연)] *三池: 개성 龍化院 崇敎寺 있던 연못 이름.
"연꽃이 피면/ 달도 별도 새도 연꽃 구경을 왔다가/ 그만 자기들도 연꽃이 되어/ 활짝 피어나는데/ 유독 연꽃 구경을 온 사람들만이/ 연꽃이 되지 못하고/ 비빔밥을 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받아야 할 돈 생각을 한다/ 연꽃처럼 살아보자고/ 아무리 사는 게 더럽더라도/ 연꽃 같은 마음으로 살아보자고/ 죽고 사는 게 연꽃 같은 것이라고/ 해마다 벼르고 별러/ 부지런히 연꽃 구경을 온 사람들인데도/ 끝내 연꽃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연꽃들이 사람 구경을 한다". 정호승 시인의 '연꽃구경'이란 시의 일부다. 그렇다. 달과 별과 새들도 연꽃 구경을 왔다가, 자신도 모르게 죄다 연꽃으로 피어난다. 하지만 배 속에 창자가 들어 있고, 창자 속에 비빔밥이 들어 있는 사람은 끝내 연꽃이 될 수가 없다. 하물며 그 향기로운 연꽃 앞에서 정말 놀랍게도 담배를 피우거나, 받아야 할 돈 따위를 생각하는 사람이 어찌 연꽃이 될 수 있으랴.
하지만 사람도 사람 나름이라서 가끔 연꽃이 된 사람이 있었다. 위의 시를 지은 곽예(郭預: 1232~1286)라는 시인도 원나라 지배하의 진흙탕 속에서 그윽하게 피어난 한 송이의 '사람 연꽃'이었다. 그는 성품이 평담하면서도 굳세고 곧았으며, 귀하고 현달한 뒤에도 벼슬하지 않을 때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 당시 민간에 스스로 잘난 체하는 사람을 '성자'(聖者)라고 비아냥거렸는데, "장원급제한 사람들 가운데 성자 짓거리를 하지 않는 사람은 곽예 한 사람뿐"이라는 말이 세상에 떠돌 정도였으니, 그 사람 됨됨이를 알 만하다.
바로 그 곽예가 옥당(玉堂: 한림원의 별칭)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다. 그는 부슬부슬 비가 내릴 때마다 혼자서 우산을 받쳐 들고, 용화지(龍化池'三池)까지 맨발로 걸어가 연꽃을 구경하고 왔다고 한다. 위의 시를 짓던 날에도 곽예는 연꽃을 보기 위해 무려 세 번이나 우산을 받쳐 들고 맨발로 용화지를 찾아갔던 모양이다. 그날 새삼스레 살펴보았더니, 연못 속에 있는 푸른 연잎들과 붉은 연꽃들은 옛날과 다를 바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푸른 피 펄펄 뛰던 젊은 시절의 그 도저한 풍정은 그대로인데, 그 검던 머리털이 온통 백발로 변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를 늙은이라고 부를 수가 있을까? 아니다,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비 오는 날 연꽃을 구경하기 위해서 하루에 무려 세 번씩이나 맨발로 연못으로 찾아가는 사람, 사물에 대한 이토록 절실한 설렘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는 사람은 몸이 비록 늙었을망정 '젊은이'라 부르는 게 옳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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