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제야 왔을까. 늦어도 한참 늦었다. 솔직히 이 사실을 공개하기도 부끄럽다. 9년 동안 뉴스를 진행하면서 '13억 거대 인구, G2로 올라선 중국'에 대해 수없이 보도하고 '중국 자본의 한국시장 공략'을 주제로 전문가와 대담을 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뉴스를 위한 준비로써 자료를 찾고 학습했을 뿐,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중국은 G2(Group of 2)로서 미국과 함께 전 세계의 경제와 안보 등 이슈를 이끌어 가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언론인이라면 꼭 가봐야 할 국가이지만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휴가를 시끄럽고 복잡한 나라에서 보낼 수는 없었다. 매일 전쟁을 치르는 것 같은 생방송 뉴스를 진행해야 하는 앵커에게 선물 같은 일주일의 휴가는, 복잡한 도심보다 유유자적 노니는 휴양지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했다.
결국 자발적 선택이 아닌 '한중청년창업경진대회' 행사의 사회를 맡아 처음으로 중국 대륙을 밟게 됐다. 대회가 열린 곳은 쓰촨성의 행정, 경제, 교통, 문화의 중심지로 중국 내 경제성장률 1위, 소비 1위로 떠오른 도시 청두(成都). 중국 4대 도시이자 서부경제 발전의 전초기지인 청두는 일부 개념 없는 유커(중국 관광객)로 인해 뇌리에 박혀버린 시끄럽고 지저분하다는 중국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시원시원하게 뚫린 도로는 상당히 깨끗했고 일상 속의 중국인들은 의외로 조용했다. 핫한 도시답게 청두 시내는 높은 빌딩들과 수많은 명품 가게들로 즐비했다. 짝퉁, 장기밀매, 인신매매의 도시라는 이면만을 보고 편견을 갖고 있었던 나에게, 청두는 신선한 문화 충격으로 다가왔다. "19세기는 영국, 20세기는 미국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단연코 중국의 것"이라고 언급한 로저스 홀딩스 짐 로저스 회장의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났다.
1박 3일의 짧았던 중국 방문은 내 인생에 예기치 않았던 전환점이 되었다. 매너리즘에 빠져 열정을 잃어버린 내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들었고 대한민국을 벗어나 더 큰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큰 꿈을 안겨주었다. 당장 중국어 학원을 찾아가 등록했고 현재 매일 점심시간 짬을 내어 중국어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직접 중국을 가보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나의 길을 인도해주는 유일한 램프는 경험이다'라고 누군가 그랬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새로운 경험이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 주었고 직접적인 경험을 통한 확고한 믿음이 미래를 설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역에만 머물러 있다가 서울에 처음 왔을 때의 자극으로 서울행을 결심했고, 우연히 들렀던 방송국에서 방송을 경험하고 나서 아나운서라는 꿈을 키워 지금에 이르렀다.
좋은 경험은 잘 경작해놓은 토지와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누구나 새로운 시작은 두렵지만 경험이라는 토지를 잘 다져놓으면 무한한 힘을 기를 수 있고 그로 인해 엄청난 수확을 얻게 될 것이다. 학원에서 어눌한 말투로 '따자하오!'(大家好! 여러분, 안녕하세요)를 배우는 내가 수백 명의 중국인 앞에서 유창한 중국어로 한중 행사를 이끌어 가는 한류 아나운서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240여만 명이 모여 사는 대구시에서 작은 사업을 하는 당신이 중국을 경험한 이후 2천만 인구의 청두시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대기업가가 되어 있다고 상상해보라. 인생의 승리는 살아있는 경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지금부터라도 수많은 경험을 쌓아 토지를 풍요롭게 하는 것은 어떨까.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요즘은 중국어도 필수예요"라는 다섯 살배기 아들 선생님의 말에 "저는 극성맞게 아들을 키우지 않을 거예요"라고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 분명히 극성스러운 엄마는 아닌데, 몇 달 후 나는 어린 아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엄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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