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글로벌 시대의 진정한 지방화

한국외국어대(스페인어 전공) 졸업. 전 한국스페인어문학회장. 전 외교부 중남미 전문가 자문위원. 현 한
한국외국어대(스페인어 전공) 졸업. 전 한국스페인어문학회장. 전 외교부 중남미 전문가 자문위원. 현 한'칠레협회 이사

지방을 한 수 아래로 보는 중앙의 관점

수많은 업무'정책 효율성과 거리 멀어

미국 세계적 기업은 중소도시에 있어

'시골사람'도 서울과 동등한 기회 줘야

34년 전 필자가 재직하는 대구가톨릭대의 전신인 효성여대로 교수로 오게 되었을 때 서울의 주변 지인들이 한결같이 "왜 지방으로 가느냐?"였다.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서울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무런 연고도 없고, 보수색이 짙다는 대구로 가서 산다고 하니 이해도 안 되고 걱정이 무척 되는 모양이었다. 두 번째 질문은 "애 교육은 어쩔 것이며, 문화생활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갓 결혼한 아내까지 서울 명동 한복판 으리으리한 38층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남편 따라 시골로(?) 오니 주변 반응은 심각하기까지 했다. 그렇다. 당시는 전국적으로 도로며 편의시설이며 각종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서울 이외의 지방은 죄다 시골로 간주되던 때였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산골 오지를 빼고는 방방곡곡 어디나 웬만한 시설은 그런대로 잘 갖추어져 있는 편이라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변하지 않은 것, 아니 30여 년 전보다 더 퇴보한 것은 바로 소위 전문직 인사나 사회지도급 인사들의 사고와 접근법이다.

지방지, 지방방송, 지방은행, 지방대학 등 미국의 100분의 1밖에 안 되는 이 조그마한 나라에서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수많은 정책이나 프로그램이 업무의 효율성이나 차별화의 관점이 아니라 중앙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이 무언가 한 수 아래라는 인상을 주는 '지방'이란 제도로 고착화되었다.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은 퇴임 후 왜 죄다 서울에 살아야만 하는 걸까? 지역감정을 부추겨서 당선된 국회의원 중에 선거 때 서류상 주민등록지만 지역에 두고 평생 생활근거지는 서울로 하는 분들은 얼마나 될까?

중앙정부와 중앙지는 서울시청이 아니고 '서울지방지'가 아닌 그야말로 전국구일진대 서울에 있는 대학 소속 교수 위주로 필진을 꾸리고, 무슨 위원회를 구성하지는 않는지? (오래전이긴 하나 심지어 무슨 농촌 발전위원회 위원에 지방 소속이 한 명도 없었던 적이 있다). 청와대에서조차 무슨 주요 인사 초청 행사를 하는데 중앙지의 언론인, 수도권의 주요 대학 총장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방의 우리들은 이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서울의 일류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한 학숙을 지어주고 장학금을 주는 그 정성만큼이라도 지역의 교육 발전에 관심을 두고는 있는 걸까? 지방 자치를 보람 갖고 잘하라고 명예직 조건으로 시작한 지방의회는 중앙 국회가 너무나 세서 그 존재감도 별로 없는데 언론의 따가운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선진 제도 벤치마킹 명목으로 관광 위주 일정으로 출장을 단체로 다녀오기 일쑤다. 지방 언론도 이런 나쁜 관행만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평소에 국회에 쏟는 그 관심의 반의반 만이라도 지방의원들의 괜찮은 활동에 할애하면 어떨까?

괜찮은 업체는 대부분 수도권에 있으니 지방 학생들은 갈 곳이 없고, 때로 서울 업체에 채용되더라도 지방 출신이니 지방에서만 근무하라는 조건을 붙이기도 한다. 지방에서 학회가 열리면 서울에서 온 사람들은 숙식 제공 등 무언가 대접을 받기를 원하고 지방 주최 측도 때로는 그걸 당연시한다. 지방 사람이 서울 갈 땐 무대접, 푸대접이 다반사인데도….

최근에 중앙부처의 고위관료가 일반 대중을 비하하는 언동을 해서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나는 동물에 비유한 그 부적절한 표현 방식보다는 인종차별적인 사고와 계급 사회 인식에 더 주목한다. 우리처럼 미국에서는 워싱턴의 상하원 의원이 되는 것을 최고의 출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앙정부에서 무슨 공항 짓는 것 하나 갖고 온 지방을 흔들지도 않으며 그런 미끼가 통하지도 않는다. 세계적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애틀에 있고, 코카콜라 본사는 애틀랜타에 있으며, 디즈니랜드는 애너하임과 올랜도 같은 중소도시에 있다. 수도권과 거리가 먼 곳에서 세계를 상대로 손님을 끌고 있다. 앞으로 서울이 아닌 지방을 생활 근거지로 할 정치인을 뽑아주는 일부터 해보자. '시골사람' 에게도 '서울지방'과 동등한 기회를 줘보자.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지방화는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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