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와서 6월 호국보훈의 달을 세 번이나 보냈다. 남들은 으레 하는 것이려니 하겠지만 보훈에 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언가 새롭고 의미 있는 보훈의 달 행사를 추진하려고 애를 썼다. 특히 올해에는 지역 유명 인사들의 홍보 캠페인, 지상철(3호선) 외부 호국 영웅 선양 대형광고와 토크 콘서트, 시민과 학생 참여 위주의 호국보훈 퍼레이드 및 달구벌 보훈문화제 등 다양한 보훈행사를 통해 그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허전함과 아쉬움이 밀려든다. 아니 걱정이 앞선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란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뜻으로 아무리 좋은 일을 하려 해도 도와주는 이가 없다면 성사가 어렵다는 말이다. 지금의 보훈이 딱 그 모습이다.
국가보훈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한다. '국가보훈이 제대로 되어야 국가가 어려울 때 국민들이 국가를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다'고. 백 번 천 번 지당한 말이다. 단, 여기서 말하는 국가보훈이 전적으로 금전적 보상이나 특별한 처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희생에 대한 기억과 그에 기반한 애국심의 함양일 경우에 한해서만 맞는 말이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완벽한 보훈이 제공되어야만 국가를 위한 희생이 가능해진다'는 명제는 경험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동서고금을 통틀어 보았을 때 국가를 위한 희생의 모습은 오히려 물질적 보상으로서의 보훈의 완결성과는 별 상관없이 나타났다. 당장 우리의 애국선열과 호국영웅들만 하더라도 보훈제도가 완벽해서 목숨을 바치고 피를 흘렸는가?
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으로 회자되는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작은 도시 칼레의 시민대표 6명이 무슨 보상이 많아서 자신의 목숨을 영국의 침략자(에드워드 3세)에게 내놓았겠는가? 보상제도의 완결성이 선행되어야만 국가를 위한 거룩한 희생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본말을 뒤바꾼 것이다.
프랑스는 국가보훈을 '기억의 정치'라고 부른다고 한다. 말 그대로 국가를 위한 선열들의 희생에 대해 후손들은 기억의 빚이 있고 그 빚을 갚는 것은 결국 희생에 대한 기억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고가 공유되어서인지는 몰라도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이 1, 2차 세계대전에서의 희생자들에 대한 보훈 문제를 논할 때 보상에 관한 문제가 주를 이룬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6'25전쟁 직후 보훈 행정이 시작된 이래 보훈에 관한 사회적 담론의 주제가 거의 금전적 보상과 특별한 처우에 대한 국가의 불찰과 미진함에 대해서만 집중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금년에도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호국보훈의 달과 관련된 신문이나 방송 내용 중에는 참전자에 대한 보상이나 대가를 다루는 사례들이 유독 많았다.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을 동원한 결과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국가를 위한 희생을 꼭 그 값어치만큼의 다른 무엇으로 바꾸어야 한다면 그것은 보훈의 영역이 아니라 손해보상의 문제로 넘어가야 한다.
필자가 아는 한 '국가보훈'이란 모름지기 국가 발전의 잠재력을 만들어 내는 국가 운영 기제로서 체제의 형태와 성격을 불문하고 국가 운영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정신적 인프라이자 소프트 파워에 해당한다. 그만큼 국가보훈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 국가 운영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보상과 처우의 문제만이 국가보훈의 전부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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