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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 최우수상 당선 소감-'박사리의 핏빛 목소리' 박기옥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과 매일신문사에 감사드린다. 내가 쓴 박사사건 이야기는 1949년 11월 29일 저녁에 일어났다. 상현달은 평화로운 우리 마을을 골고루 뿌려대고 있었다. 갑자기 온 마을에 괴기가 감돌았다. 총과 죽창, 긴 칼을 든 검은 그림자들이 골목을 점령했다. 중요한 연설을 한다며 사랑방에 놀고 있는 청'장년을 논 마당으로 끌고나갔다.

어디서 총성이 들렸다. 그것을 신호로 마을 전체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공비들은 집집이 습격했다. 도망칠 기미가 보이면 바로 몽둥이와 칼을 휘둘렀다. 학살의 현장에는 놈들의 무자비한 광란의 칼춤이 바람을 갈랐다. 잔인한 칼날에 꽃다운 젊은이들의 선혈이 낭자했다. 그들은 불과 몇 시간 동안 무고한 청'장년 38명을 죽이고, 28명에게 큰 상처를 입혔으며, 초가 108채를 불태웠다.

나는 우리 마을의 아픈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유독 '그날의 그 사건'을 선택한 것은 나의 책무라 여겼기에. 누군가가 증언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그날의 참상은 역사 속에 깊숙이 파묻혀 버릴 테니까.

막상 67년이 지난 일을 추적하려니 어려움이 많았다. 묻힌 사실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음에 보람을 느꼈다. 전국에 흩어진 사망자의 유족과 중상자 가족, 70여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울먹이며 진술하는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했다. 특히 생존자의 증언을 들을 때는 그도 울고 나도 울었다.

실체적 진실을 객관적 잣대로 서술하고자 노력했지만, 문득문득 목울대를 치미는 감정을 다스리는 데 애를 먹었다. 영령들이 겪었던 찰나의 심정을 어찌 글로서 엮어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질곡의 삶을 살아온 유족의 목소리는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내가 쓴 글이 지난 역사를 반추하고 내일을 밝히는 자그마한 등불이 되었으면 좋겠다.

희생자와 유족에게 여태 아무런 보상이 없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영령들의 명예 회복은 언제쯤 이루어질지…. 비명에 간 38위의 영령에게 당선의 영광을 바친다. 나의 글쓰기의 모태인 '대구수필문예대학', 선'후배 문우의 응원에 감사드린다.

▷약력=1949년 경산 와촌 출생. 성광고'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경북대학교 산업대학원 수료, 경산시 공무원, 재건중학교 야학 운영, 대동초등학교 총동창회장'장학회장 역임, 모리코트상사 대표, 수필집 '고쳐 지은 제비집'. '소금 세례', 수필문예회장 역임, 현 경산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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