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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의 문학노트] 이별에도 능력이 필요할까?-김행숙의 '이별의 능력'

나는 2시간 이상씩 노래를 부르고/ 3시간 이상씩 빨래를 하고/ 2시간 이상씩 낮잠을 자고/ 3시간 이상씩 명상을 하고, 헛것들을 보지, 매우 아름다워./ 2시간 이상씩 당신을 사랑해./ 당신 머리에서 폭발한 것들을 사랑해./ (중략) /그렇군. 하염없이 노래를 부르다가/ 하염없이 낮잠을 자다가/ 눈을 뜰 때가 있었어. /눈과 귀가 깨끗해지는데 /이별의 능력이 최대치에 이르는데 /털이 빠지는데,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2분간 냄새가 사라지는데 /나는 옷을 벗지, 저 멀리 흩어지는 옷에 대해 /이웃들에 대해 /손을 흔들지. (김행숙의 '이별의 능력' 부분)

김행숙의 '이별의 능력'이란 시집을 읽었습니다.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 사이의 불화하는 상황들을 끝까지 부여잡으려고 몸부림치는 나의 현재가 시인의 목소리와 만나 많이 쓸쓸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도 그렇지만 그녀의 시 안에서의 '나'도 하나가 아닙니다. 늘 분열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들어가 보면 그 분열이 단순한 분열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어떤 대상과 만나기 위한 힘겨운 몸부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 속에 들어 있는 '또 다른 나'가 이미 타인이기도 한 것 아닌가요? 오히려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타인보다는 내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더 많습니다. '포옹'은 대상과 내가 가장 가까이 접촉하는 행위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포옹'이라는 시에서 결국 서로가 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어느 인터뷰에서 시인은 '타자와 내가 아무리 거리를 좁히려고 해도 호흡할 틈은 남겨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숨이 막혀 죽는다'고도 했습니다. 결국 '나'와 가장 가까운 것이 '또 다른 나'이니 내가 나 자신에게도 호흡할 틈을 남겨둬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어렵습니다. 솔직히 나는 이런 류의 시가 좋지만은 않습니다. '분석하면 실패한다, 찰나에서 잡아낸 생각에 불과하다, 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로 태어난다.' 김행숙이라고 검색하면 떠오르는 평론가들의 이러한 표현도 싫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싫다고 말하면서 열심히 읽고 있는 나는 또 누구일까요? 소위 미래파의 대표적 시인인 김경주의 시로 이 연재를 시작한 것은 또 무슨 조화일까요? 김행숙의 시는 분석되기를 거부하는 시, 그럼에도 질펀한 평론가들의 잔치가 벌어집니다. 김행숙이 평론가들을 먹여 살리고 있지요? 소위 대중적인 시, 쉽게 읽히는 시도 많습니다. 사실 어떤 종류의 시가 더 나으냐 하는 질문은 이미 무의미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니까요.

어떤 사람은 시는 좋은데 이별을 능력이라고 표현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별이란 단어가 가지는 일반적인 개념이 능력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별'이란 단어와 '능력'이라는 단어가 자꾸 내 안에서도 균열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별의 사전적인 의미는 '서로 갈리어 떨어짐'을 뜻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이별을 맞이했을 때 우린 그 부재(不在)가 이루어지는 상황에 대해 한없는 슬픔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상황이 지닌 본질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슬픔 속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법 많은 삶을 살아보니 이젠 이별에도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체로 공감합니다. 어쩌면 만남의 능력보다는 이별의 능력이 더욱 필요한 것이니까요.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과 아름다운 이별을 해야 함은 남은 나의 행복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이 책의 저자를 알지 못하지만, 킁킁 짐승의 냄새를 맡듯이 책의 숨소리, 문체의 숨결을 느낄 때./ 내가 이 책을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책이 낭독되고 있습니다. 내 목소리도 만질 수 없고 허공도 만질 수 없습니까. 지금도./ 지금도 이 책은 이 책입니까. ( 부분)' 내 목소리도 만질 수 없고 허공도 만질 수 없습니까? 하는 시인의 물음. 네. 그래요. 글자만 읽고 있을 뿐이에요. 이 시는 나의 시입니까? 하는 물음. 아니요. 결코 내 시가 될 수 없어요. 되지 못했어요. 내 능력의 한계겠지요. 이만큼 달려가니 저만치 멀어져 버렸어요. 하지만 그것이 그녀가 바란 것 아니던가요? 이런 류의 시인들 정말 미워요. 지가 뭔데, 끝까지 숨어버리는 겁니까? 숨으니까 자꾸 찾고 싶잖아요. 그게 작전임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가요. 시인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겠지요? 성공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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