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신비를 간직한 자연의 보고".
캄차카는 태평양과 오호츠크해를 접한 러시아 동쪽 끝의 반도로 한반도보다 조금 더 크다. 활화산들이 많아 '불의 땅'이라 불리기도 하며 지구상 자연이 완벽하게 보존된 마지막 지역 중 한 곳이다. 이번 여행은 2년 전부터 계획을 세워서 추진해왔다. 그러나 생각보다 현지 정보가 너무 부족하였다. 러시아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보기보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나라라서 언어에 대한 불안감은 있었지만 일단 들이대 보기로 하였다. 이번 동행자들은 여행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예 멤버 6명.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오기 위해 출발 10일 전에 사진전문가도 합류했다.
김해공항서 이륙한 러시아항공기는 북한 영공을 거쳐 1시간 40분 만에 밤늦은 시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근처 예약을 한 호텔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이른 아침 캄차카로 출발하는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캄차카까지는 비행기로 3시간 30분 거리. 120여 석의 소형 항공기는 기류의 영향에 약해서인지 가끔 스튜어디스가 통로에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여러 번 요동을 친다.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춘 비행기의 창가에 비친 하얀 설산의 모습과 끝없이 펼쳐진 습지들이 여기가 동토의 땅 캄차카라는 것을 설명을 해주는 듯하다. 6월 초의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트랩을 내리자마자 파고드는 추위는 얇은 점퍼 차림의 이방인들에게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게 하는 듯하다. 준비한 두꺼운 옷으로 중무장하고 나서야 한적한 시골의 아담하고 정겨운 공항에 서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활화산을 배경으로 지은 공항에 마침 주차해 놓은 비행기와 수증기를 뿜으며 서 있는 설산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 장의 그림엽서이다. 주도는 페트로파블로프스크-캄차츠키. 인근 엘리조보에 있는 공항과는 자동차로 약 30여 분 거리다. 공항서 출발하는 104번 미니버스는 50루블(약 1천원 정도)에 캄차카 시내까지 간다.
승용차는 대부분 일본산이라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차선은 우리나라와 똑같은 오른쪽이다. 한국서 수입한 중고버스들이 한글을 그대로 둔 채 운행을 한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서재로 가는 305번 버스가 캄차카 버스터미널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서문시장 안 골목에서 파는 보리밥집 생각이 절로 난다. 경비를 절감하고자 잡은 게스트하우스는 시내 중앙에 있어 이동하기 편리하긴 하나 한 방에 최대 18명을 수용할 수 있는 2층 침대 9개가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러시아 여행객들 여러 명이 이미 터를 잡고 있었다. 하루를 묵은 우리 일행은 여러 가지 불편함에 다음 날 좀 더 나은 펜션으로 옮겼다. 우선 현지 여행사에 들러 이후 스케줄을 잡기로 했다. 캄차카는 개인 가이드 없이 함부로 여행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다. 우선 특수차량이 아니면 이동하기가 어려운 지역이 많고, 또한 오직 헬기로만 갈 수 있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철저한 자연보호 정책으로 계절별, 지역별로 통제하는 지역도 많고 야생동물 보호와 그 반대로 위험한 부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6박 7일 캄차카 일정 중에 도착 첫날은 빼고, 온천 체험과 특수차량을 이용한 설산투어, 헬기투어, 시티투어 등 총 4가지 테마를 설정하여 여행사와 협상에 나섰다. 온천은 우리끼리 승합택시를 이용해 주도에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한 지역의 야외 온천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시티투어도 도시가 그리 크지 않고 버스 노선도 단순하므로 버스로 투어를 하기로 하였다. 설산투어는 우리 일행들끼리만 단독으로 1인당 1만루블(약 19만원)에, 헬기투어는 연합으로 다른 팀들과 함께하며 1인당 3만3천루블(약 62만원)에 계약을 마쳤다. 오기 전 많은 검색을 했지만 현지 협상에서 상당히 싸게 계약을 해서 모두 흡족해하였다. 공돈을 번 느낌이 들어서인지 일행들은 근사한 식당에 가서 여러 가지 요리들과 제법 비싼 보드카를 2병이나 비우고 나니 영업시간이 끝났다고 종업원이 재촉한다. 시간은 오후 9시. 백야 현상으로 바깥은 아직 대낮이다. 이곳의 웬만한 상점과 식당들은 모두 오후 9시에 문을 닫는다. 맥주 몇 병을 들고 숙소에 돌아와 마지막 이야기를 끝내고 이국 땅에서 첫날의 설렘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화산 위로 별이 쏟아지는 꿈을 꾸다 잠을 깼다. 어제 마신 보드카의 숙취가 별이 되어 아른거린다.
이른 아침 마중 나온 차량에 몸을 싣고 한 시간가량 시외로 달려가니 바퀴가 엄청나게 큰 특수차량이 있는 곳에 도착을 했다. 이 차에 짐을 옮겨 싣고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운전수 이름은 러시아스럽지 않게 마이클이란다. 통역 및 가이드인 안드레아에게 물으니 차량을 운전하려면 정비는 물론이고 인명구조, 응급처치, 생존법 등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한다. 특별히 개조한 차는 굴러도 덜 다치게끔 얇은 스티로폼 같은 걸로 내부를 둘러놓았고, 여러 가지 장비와 5명이 최소 5일 이상 버틸 수 있는 비상식량도 실려 있다. 일반 비포장도로를 30여 분 지나자 눈길로 이어진 오르막길로 계속 올라간다.
비포장길과 눈길, 고도에 따라 타이어 공기를 넣었다 뺐다 한다.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에는 높은 rpm으로 인해 열을 식히기 위해 가끔 엔진 위로 눈을 가득 올려놓는다. 고도가 높을수록 날씨가 변덕스럽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흐린 날씨로 하늘과 지면의 구별이 어려워지고 길은 아예 없다. 마이클은 장착된 GPS를 보면서 차 문을 반쯤 열어 몸을 비스듬히 쭉 내밀고 연신 고글과 선글라스를 번갈아 끼면서 사방을 둘러본다. 차는 오른쪽으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기울어져 일행들은 한쪽으로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고 있다. 모두 여행에는 베테랑이라 자부하지만 걱정과 두려움의 눈빛에 웃음기는 사라지고 긴장과 적막이 흐른다. 차 앞에 펼쳐진 설원에는 어디가 끝인지 경사가 있는지 도무지 구분이 안 간다. 더 이상 전진이 어렵다고 판단한 마이클이 차를 멈추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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