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적막/이태수 지음/문학세계사 펴냄
이태수 시인이 13번째 시집 '따뜻한 적막'을 출간했다. 침묵을 화두로 하는 시집 '침묵의 푸른 이랑'(2012), '침묵의 결'(2014)에 이어 출간한 시집으로 '적막'을 따뜻하게 끌어안고 있다. 이번에 실린 작품들은 자연과 어우러진 심상 풍경들을 겸허하고 신성한 언어로 감싸 안는가 하면, 적막한 현실 너머의 풍경을 끌어당겨 안으려는 시인의 마음을 보여준다.
'나도 저 의젓한 회화나무처럼/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자리에 서 있고 싶다/ 비바람이 아무리 흔들어대도, 눈보라 쳐도/ 모든 어둠과 그림자를 안으로 쟁이며/ 오직 제 자리에서 환한 아침을 맞고 싶다.' -환한 아침- 중에서.
시인은 회화나무를 닮고 싶어 한다.
시인이 닮고 싶은 것은 많다. 의젓한 회화나무를 닮고 싶을 때도 있고, 그 또는 그분(어둠 속에서, 그 사람의 말)을 닮고 싶을 때도 있다. 시인이 닮고 싶은 존재들은 시인의 삶에 나침반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체념과 자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책과 체념은 종국에는 시인이 의지를 새롭게 불태우게 하는 힘이 된다.
'오랜만에, 불현듯 뇌리에 꽂히는/ 네 생전의 말 한 마디/ 나, 너를 좋아해/ (중략)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나의 무정, 어쩔 수는 없었지만/ 이제 와서 이다지 아플 줄이야/ 하지만 끝내 건너서는 안 될/ 너와 나 사이에 흐르는 강/ 나도 너를 좋아했었는데.'-레테의 강- 중에서.
시인은 '길 위에서 홀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흐르는 세월 탓도 없지는 않겠지만, 서늘하고 적막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너머의 따스한 풍경에 다가가려 하거나 그 풍경을 끌어당겨 깊이 그러안으려 하는 내가 이젠 낯설지 않다'고 말한다.
어쩌면 시인이 그런 '세월'에 이르렀기에 먼 옛날 그가 했던 '나, 너를 좋아해'라는 말이 이다지도 아프게 들리는 것일 게다. 그 말을 들은 것은 오래전인데, 아픈 것은 지금이다. 하지만 낭패감이 들지는 않는다.
'서녘은 펼쳐 놓았던 놀을/ 이제 곧 거둬들이겠지만 아직도 너무 붉다/ 잊으려 애써도 눈에 선한 너의 모습/ 너를 향한 내 마음은 저녁놀보다 붉다.'-황혼의 비가- 중에서.
이제 곧 어둠이 걷어갈 서녘 놀이 아직도 너무 붉은 것은, 그 붉은 노을보다 내 마음이 더 붉은 까닭, 또한 '이제는 길 위에서 홀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붉은 놀이 시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왁자지껄 분주하던 시장통을 돌아 적막한 장소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붉은 서녘 놀보다 내 마음이 더 붉은 것은, 내 피가 너무 뜨겁기 때문일 것이다.
이태수 시인은 '이 조촐한 시집을 마음 가난하고 적막한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다'고 말한다. 마음 가난하고 적막한 사람 중 한 사람은 시인 자신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인환 고려대 명예교수는 시집 해설에서 '시인은 침묵과 적막 속에서 근거 자체에 대한 믿음을 확인한다. 궁극적 근거를 굳게 믿고 있다는 점에서 시인의 적막은 따뜻한 적막이다. 시인은 시집을 감동적인 감사의 기도로 마무리한다. 나 자신까지도 나를 떠난다고 하더라도 근거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한, 나는 나의 현재를 보람 있게 가꾸고 나의 세상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한다. 129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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