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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불청객 '태풍'] 1979년 발생 '팁' 나가사키 원폭 1만배…사상 '최악

전문가들이 말하는 태풍의 'A to Z'

많은 기후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가 가속하면서 슈퍼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태풍이 발생해 북상하는 해역인 저위도 서태평양의 수온이 상승하고, 태풍을 몰고 오는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의 범위가 점점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신문 DB
많은 기후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가 가속하면서 슈퍼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태풍이 발생해 북상하는 해역인 저위도 서태평양의 수온이 상승하고, 태풍을 몰고 오는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의 범위가 점점 확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신문 DB

옛 문헌에 나타난 우리나라 바람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 모본왕(慕本王) 2년 3월(서기 49년 음력 3월)에 폭풍으로 인해 나무가 뽑혔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그 당시 바람의 세기를 현재 기준에 따라 짐작해 보면, 평균풍속 30m/s(시속 110㎞) 이상이다. 이 정도면 중형급 태풍으로 볼 수 있다. 신라에서는 경주에 큰바람이 불고 금성동문이 저절로 무너졌다고 전해 내려온다.

고려시대에는 정종(靖宗) 6년(서기 950년) 음력 9월 1일 폭우가 내리고 질풍(疾風)이 불어 길거리에 죽은 사람이 있었으며 광화문이 무너졌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명종(明宗) 17년(서기 1526년) '폭풍과 호우가 밤낮으로 계속 몰아쳐 기와가 날아가고 나무가 뽑혔다'고 기록돼 있다.

태풍의 순 우리말은 '싹쓸바람'이다. 한 번 휩쓸고 가면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태풍의 위력이 대단하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조금이라도 태풍의 피해가 덜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개미' '나리' '장미' '미리내' '노루' 등 귀엽고 연약한 곤충이나 동'식물의 이름을 제출했다.

태풍의 계절을 맞아 이번 주 '즐거운 주말'에서는 태풍을 살펴보기로 한다. 태풍이 생기는 이유에서부터 우리나라와 인연이 있는 태풍 기록들, 그리고 태풍과 관련한 여러 궁금증에 대해 알아본다.

정욱진 기자 penchok@msnet.co.kr

본격적인 태풍의 계절이다. 국가태풍센터가 조사한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수 현황'(1904~2015년)에 따르면 이 기간에 총 345개의 태풍이 우리나라 인근으로 왔다. 그중 90%의 태풍이 7~9월에 집중됐다. 얼마 전엔 2016년 1호 태풍인 미크로네시아 전사의 이름을 딴 태풍 '네파탁'을 선두로 올해의 태풍 이야기가 시작됐다. 경북대 지구시스템과학부 민기홍 교수(천문'대기과학 전공)와 계명대 김해동 교수(지구환경학전공)의 안내를 받아 태풍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태풍은 왜, 어떻게 만들어지나?

지구의 적도 부근은 극지방보다 태양열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두 지역 사이에는 열적 불균형이 발생하게 된다. 태풍은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저위도 지방의 따뜻한 공기가 바다로부터 수증기를 공급받으면서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동반하고 고위도로 이동하는 기상 현상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남'북위 5° 이상 열대 해역에서 해수면 온도가 26℃를 넘고, 대기 중에 소용돌이가 존재할 경우 만들어진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은 7~10월 사이에 많이 발생한다. 태풍은 고수온 해역을 따라 이동하며 강하게 발달한 뒤, 고위도로 접근함에 따라 열과 수증기 공급이 줄면서 강도가 점차 약화돼 소멸한다. 발생해서 소멸하기까지 태풍의 수명은 대략 7~10일 정도다.

◆태풍의 이름은 어떻게 정하나?

태풍에는 이름이 있다. 폭풍의 위력이 열대폭풍 수준에 도달할 때 이름이 부여된다. 태풍의 명명제가 실시되기 전에는 위도와 경도에 따라 태풍을 구별했으나 혼란을 초래하기 일쑤였다. 특히 같은 해역에 2, 3개의 태풍이 발생할 경우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알파벳 글자로 태풍을 구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A와 B의 무전 암호명이었던 'Able'과 'Baker' 같은 이름이 사용됐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 미국기상청은 1953년 태풍에 여자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주로 예보관들 자신의 아내나 애인의 이름이었다. 1977년까지는 여자 이름만 사용됐다. 그러다 1978년 동태평양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에는 여자 이름과 남자 이름을 교대로 붙이되 영미식 이름뿐 아니라 스페인과 프랑스 이름도 사용했다.

2000년 1월부터는 태풍의 이름을 서양식의 태풍 이름에서 아시아 14개국의 고유 이름으로 변경해 각국 주민의 태풍에 대한 관심과 경계를 강화했다. 국가별로 10개씩 제출한 총 140개의 이름이 각 조 28개씩 5개 조로 구성돼 1조부터 순환하면서 사용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개미' '나리' '장미' '미리내' '노루' '제비' '너구리' '고니' '메기' '독수리' 등의 태풍 이름을 제출했다.

◆피해를 주면 이름이 퇴출된다?

태풍이 막대한 인명'재산상의 피해를 줄 경우 이름이 퇴출되기도 한다. 매년 개최되는 태풍위원회 총회에서는 그 해 막대한 피해를 입힌 태풍의 경우 앞으로 유사한 태풍 피해가 없도록 해당 태풍 이름의 퇴출을 결정한다.

피해를 주지 않은 태풍일지라도 다른 사유로 더는 현재 태풍 이름을 사용할 수 없을 경우 새로운 태풍 이름으로 대체된다. 태풍 이름의 변경은 퇴출된 태풍 이름을 제출한 국가에서 결정한다.

우리나라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힌 태풍 루사(RUSA)는 2002년 퇴출돼 누리(NURI)라는 이름으로 개명됐고, 이듬해 경상도 지역에 커다란 상처를 남긴 태풍 매미(MAEMI)도 무지개(MUJIGAE)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 우리나라에서 제시한 태풍 나비(NABI)의 경우 2005년 일본을 강타하면서 엄청난 재해를 일으켜, 독수리(DOKSURI)라는 이름으로 대체됐다.

◆태풍과 허리케인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연간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은 평균 80개 정도인데, 이를 발생 해역별로 서로 다르게 부르고 있다. 북태평양 남서해상에서 발생하는 것을 태풍(Typhoon), 북대서양'카리브해'멕시코만 그리고 동부태평양에서 발생하는 것을 허리케인(Hurricane)이라고 부른다. 또 인도양과 호주 부근 남태평양 해역에서 발생하는 것은 사이클론(Cyclone), 호주 부근 남태평양 해역에서 발생하는 것을 지역 주민들은 윌리윌리(Willy-Willy)라고 부르기도 한다.

발생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은 모두 초속 17m 이상이다. 태풍은 발생에서 소멸까지 대략 1주일에서 한 달 남짓한 수명을 가지며 발생기, 발달기, 최성기, 쇠약기의 4단계를 거친다.

◆태풍은 어떻게 분류하나?

세계기상기구(WMO)는 중심 부근 최대풍속이 초속 33m 이상인 열대저기압을 '태풍'(TY)으로 부르고, 최대풍속이 초속 17~24m인 것은 '열대폭풍'(TS), 25~32m인 것은 '강한 열대폭풍'(STS)으로 분류한다. 반면 우리나라 기상청에서는 중심 부근 최대풍속이 초속 17m 이상인 열대저기압을 모두 태풍으로 분류하는 대신, 최대풍속을 기준으로 강도를 '약, 중, 강, 매우 강'으로 구분한다. '약'과 '중'은 각각 '열대폭풍'과 '강한 열대폭풍'과 같고, 초속 33m 이상인 경우를 둘로 나눠 43m까지는 '강', 44m 이상일 때는 '매우 강'으로 분류한다. 태풍의 크기는 초속 15m 이상의 바람이 부는 반경을 기준으로 나타내는데, 300㎞ 미만이면 소형, 300㎞ 이상 500㎞ 미만은 중형, 500㎞ 이상 800㎞ 미만은 대형, 800㎞ 이상이면 초대형이다.

◆전 세계 가장 강력했던 태풍 기록은?

태풍이 지닌 에너지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1만 배에 이른다고 한다. 태풍의 세기는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강력한데, 이제까지 북서태평양 지역에서 관측된 태풍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발달했던 것으로 알려진 태풍은 1979년 10월 4일 발생한 태풍 '팁'(TIP)이다. 팁이 10월 12일 기록했던 870헥토파스칼(hPa)의 해면기압은 대서양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이나 인도양의 사이클론을 통틀어 현재까지 관측된 가장 낮은 기압 기록이다. 팁은 10분 최대풍속도 시속 260㎞(초속 72.2m)로 역대 최고이며, 1분 최대풍속은 305㎞/h(84.7m/s), 태풍 반경은 최대 1천110㎞를 기록했다.

◆지구 상에 없어서는 안 될 태풍?

태풍이 피해만 주는 것은 아니다. 태풍은 전 지구적으로 봤을 때 꼭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다. 남'북위 5° 부근에서 발생해 적도의 남는 열을 극지방으로 수송해줘 불균형하게 분포한 지구의 열적 평형을 유지시킨다. 태풍 1개가 가진 평균 에너지양은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1만 개의 위력에 달한다. 연평균 26개 정도 발생하는 태풍 수를 감안한다면, 한 해 동안 태풍이 수송해주는 열은 어마어마한 양이라는 것이 태풍 전문가들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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