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망신을 당해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검찰 이야기도, 실력자의 처가 재산 상속 이야기도, 두 달 넘게 끌고 있는 새누리당의 피 터지는 집안싸움 이야기도 모두 뒷전으로 밀려날 정도로 사드는 최대 현안이다. 성주에 날아든 사드 때문에 대구경북은 특히 그렇다.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에 대해 토를 달 생각은 없다. 핵보유국이라고 큰소리를 치면서 사흘이 멀다 하고 하늘로 바다로 미사일과 장사정포를 쏘아대는 북한의 비정상적인 정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일촉즉발의 양상을 띠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보여주는 절차와 방식은 도저히 정상이라고 할 수가 없다. 기가 막힐 따름이다. 선후를 따져 사소한 건 뒤로 미루고 중대사는 앞당겨 처리해야 한다지만 이건 아니다. 도대체 일을 되도록 하자는 건지 안 되도록 하겠다는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엉망이다.
정부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특히 배치 예상 지역 주민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은 건 생각할수록 괘씸하다.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을 생략했다. 안 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으면 오산이다. 촌사람이라고 무시한 건가. 한민구 국방장관은 거짓말쟁이가 됐다. 안 한다고 모른다고 하다가 갑자기 해버렸으니. 이 과정에서 서울의 언론들은 배치 예상지라며 이곳저곳을 찔러보기식으로 추측성 기사를 남발했다. 전국이 들끓었다. 결국 성주가 종착지였다. 칠곡, 양산인 줄 알았다가 날벼락을 맞은 성주 민심은 예상대로 폭발했다. 물과 계란이 황교안 총리 머리 위로 난무하던 매일신문의 16일 자 1면 사진은 민심의 폭발 현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양반 동네, 우국 충절의 고향이라는 성주라고 나라에서 까라면 그냥 깔 줄 알았나 보다. 서울 근교에는 단 한 기도 없는 원자력발전소도, 방사성폐기물처리장도 주면 주는 대로, 받으라면 넙죽넙죽 받아온 촌사람들이지만 더 이상은 곤란하다는 게 성주 사람들이다. 서울 사람들 좋으라고 촌사람들만 희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서울 사람들이나 촌사람들이나 대한민국 국민이기는 매일반이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때는 지금 성주보다 더했다. 온 제주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공사가 지연돼 손해가 막심했다. 전국의 '시위꾼'들이 다 모여들었다. 밀양 송전탑 건설 때도 그랬다. 물리력 충돌도 잦았다. 사건이 확대되고 장기화되고 파장이 증폭된 건 외부 세력의 개입 영향이 컸다. 정부 발표도 그랬고 언론들도 그런 조의 보도를 쏟아냈다. 그런 줄 알았다. 그 지역 사람들이 너무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드의 성주 배치 결정 과정을 보면서 내가 아는 게 다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성주 군민들을 향해 정부가 보여준 모습이 강정마을에서도 밀양에서도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동병상련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국민들로 하여금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건 다름아닌 정부다. 서투르고 무지막지한 정부의 일처리 방식이 잘못이지 그런 생각을 하는 국민들 탓은 아니다.
서울 언론들의 보도를 접하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된다. 서울 언론들은 신공항 때도 그랬다. 지역이기주의라고 매도하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성난 민심을 살피고 달래줄 생각은 않고 외부 세력의 개입 운운하면서 폭력성만 부각시켰다. 또 전자파도 소음도 무해하다는 게 입증된다면 이 난리를 칠 게 뭐 있느냐는 식이었다. 더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건 뭐라도 하나 더 얻어내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다. 아무리 서울 사람들을 위한 언론이라지만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만일 서울에, 수도권에 사드를 배치하려 했다면 정부가 성주와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했을까를 생각해본다. 분명 달랐을 거다.
억울하지만 촌에 살아서 감내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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