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노력하지 않는 개·돼지의 반성

임우재 삼성전기 상임고문의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보면서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역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 오너의 사위라서다. 대학 졸업 직후에 장가갔으니 '부마'(駙馬) 생활이 벌써 20년 넘었다.

다행히 그 친구는 행복하게 산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가정사에 불만을 터뜨리는 걸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가끔씩은 '금수저' 아내와 '재벌 3세' 아이들 사진을 대놓고(?) 자랑, 은근히 부아를 돋우기도 한다. 그의 슈퍼카나 으리으리한 가족 해외여행이 부러워서 이러는 건 '저~얼~대' 아니라고 우겨본다.

하지만 소주를 진탕 마신 몇 년 전 어느 날, 그의 취중 고백도 잊히지 않는다. '장인과 처남 눈치 보며 사는 신세를 너희 흙수저가 어찌 알겠느냐'는 푸념이었다. 하루하루가 고달픈 '사축'(社畜'가축처럼 회사에 사육당하며 일만 하는 직장인을 뜻하는 은어) 친구들의 하소연에 대한 위로였겠지만….

임 고문 또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남자 신데렐라'로서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회장님의 손자인)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어려웠다", "결혼 생활이 괴로워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고 토로했다. 미생 주제에 100% 공감은 애당초 불가능하지만 재벌 사위의 '애환'을 귀동냥한 터라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문득 몇 년 전 '대한민국에서 ○○○으로 산다는 것'이란 제목으로 TV 전파를 탄 광고가 생각난다. 직장인, 청년 백수, 이등병이 극중극(劇中劇) 형식으로 서로의 모습을 부러워하는 장면이 이어지는 그 광고다. '부럽다. 재벌 2세가 되어봤어야 재산분할 청구 소송도 내보지'는 아니고~

그렇다. 사는 게 피곤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고통스럽기만 한 나의 일상도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게 차라리 속 편하다. 철인(哲人)이 아닌 다음에야,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근심이 더 커지는 게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인생이다.

그런 면에서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궤변에 대해서 욕만 할 것도 아니다. 물론 국민 99%를 개'돼지에 비유한 것은 괘씸하다. 그러나 부질없는 한여름 밤의 꿈에서 깨어나게 해준 데 대해서는 도리어 고맙다고 인사해야 할 것 같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필자는 "1%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먹고살 수 있게만 해주면 되는 개'돼지"인데도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진리'를 잊고 살았다. 반성한다.

임 고문과 나 전 기획관의 이야기는 철 지난 우스갯소리를 다시 읊조리게 만든다. 장래 희망이 재벌 2세인데, 아빠가 영 노력을 하지 않아 답답하다는 '초등학생의 인생 고민'이다. 아빠가 안 된다면, 엄마라도 재벌 세컨드가 됐으면 좋겠다는 '옹주의 꿈'이다.

두 사람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들의 송사로 얼토당토 않은 신데렐라의 꿈을 꾸는 이가 줄었기를 바란다. 철이 덜 든 우리집 아이들도 노력하지 않는다고 아빠, 엄마를 더 이상 타박하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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