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선주의 야생화 이야기] 여름 온 들판에 서리 내린 듯 하얗게 덮어버리는 꽃, 망초

망초꽃 향기(작사, 임금옥).

'초록을 풀어놓은 들길을 따라 망초꽃 향기 닮은 쪽진 내 엄마 하늘빛 미소 지며 올 것만 같아 바람이 숨 고르는 언덕에 올라 빛바랜 추억 봇짐 살며시 풀어 연둣빛 가지 사이 걸어 놓고서 뻐꾸기 노랫소리 자장가 삼아 가슴 속 그리움을 적시고 만다'.

위의 시처럼 엄마의 향기를 닮은 꽃이 있다. 요즘 들과 산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꽃이 있다. 꼭 계란을 닮은 꽃, 바로 '망초'이다. 이 식물은 원래 1900년대 초까지는 우리나라에 없는 식물이었다. 그 이후에 국내에 들어온 식물이다. 원산지가 북아메리카이다.

'망초'와 유사한 종으로 '개망초'가 있다. 형태적인 차이로는 '개망초'가 꽃이 좀 더 크고, 망초보다 한 달 정도 늦게 피는 차이 외에는 거의 사촌이라고 불릴 만하다.

'망초' 한 그루에 맺는 열매 개수가 평균 150개로 번식력이 엄청난 풀꽃이다. 농업에서는 경작지에서 재배하는 식물 이외의 것을 '잡초'라고 한다. 말 그대로 '잡스러운 풀'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모든 식물은 이름이 있고 쓰임새가 있다. 개인적으로 '잡초'는 없다고 생각한다.

'망초'라는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면, 구한말 인천 개항 이후 경인선, 경부선철도공사를 하면서 미국에서 수입한 침목에 묻어 들어와서 퍼지기 시작했다는데, 그 시점이 을사늑약(1905년), 경술국치(1910년)로 나라의 국운이 기울던 때라 국민들 사이에 나라가 망할 때 피는 꽃이라고 '망국초'(亡國草)라고 불렀다. 그 후 이름이 안 좋다고 해서 '망초'로 줄여 불렀다.

이어 망초 비슷한 꽃이 국내에 들어와 번졌고 '망초'와 비슷하다 하여 '개망초'라고 불렀다. 그 예로 '미나리'와 '개미나리', '벚나무'와 '개벚나무'처럼…. 식물명에서 '개'는 비슷하다, 유사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망초'는 농약을 쳐도 잘 죽지 않는 특성이 있어서 그런 이유로 농부들이 '이런 망할 놈의 풀'이라고 해서 이름이 '망초'가 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망초'의 귀화 시기에 비하여 농약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970년대 이후인 점에 미루어 그다지 신빙성은 없어 보인다.

'망초'의 줄기에는 많은 잎들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무질서하게 잎을 피우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일정한 규칙이 있다. 잎이 달리는 위치가 135도씩 돌아가면서 나온다. 135도는 360도를 8분의 3바퀴씩 도는 숫자다. 즉, 잎을 아래에서부터 순서대로 따보면 8번째 잎에서 줄기를 세 바퀴 돌고 원래 위치로 돌아오게 된다. 식물이 이와 같은 잎차례를 갖는 것은 모든 잎이 효율적으로 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거나 줄기의 균형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함이다. 잎이 나는 순서는 수학적 법칙에 따르고 있고, 자연계에 존재하는 법칙을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어려웠던 시절에는 '망초'의 잎이 아직 연할 때에는 이를 된장국에도 넣어 먹고 나물로 상용하였다는 이야기를 볼 때 우리 선조들이 '망초'를 그리 배척만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보잘 것 없거나, 주로 빈터나 길가에 피는 꽃이지만 풀 전체를 비봉이라 하여 청열, 해독, 거풍, 지양의 효능이 있어서 중이염, 결막염, 풍습골통, 혈뇨를 치료하는 데에도 쓴다고 한다.

여름 들판에 서리 내린 듯 하얗게 덮어버리는 망초. 망초를 보고 있으면 속이 후련하고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다. 망초는 그늘이 있는 곳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넓은 들판에서 자라는 꽃이다. 호연지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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