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참여마당] 수필: 세상에 이런 일이

# 세상에 이런 일이

세월이 흘러 정년퇴직한 지도 13년이 지나가고 있네요.

퇴직 전 직장동료들과 등산을 갔다가 귀갓길에 일어난 꿈같은 현실. 나의 추억 아닌 실수를 기억하면서 지면으로 말씀드릴까 합니다.

우리들은 한 직장. 한동네에 살고 있는 회사동료이고 또한 마라톤 동우회 회원이지요. 제가 회사에 근무하던 어느 초겨울이었습니다. 동료 직원이 신차를 구입해 차주 임 씨와 송 씨, 권 씨, 저, 이렇게 네 명이 시승식 겸 등산을 하기로 했지요. 저도 아내가 마련해준 도시락을 배낭에 넣고 기분 좋게 집을 나섰습니다. 대둔산의 멋진 경치를 구경하고 하산을 하니, 초겨울이라 어느새 해가 졌습니다. 우리들은 산 아래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회와 저녁식사, 소주 2병을 비우면서 오늘 등산에 대한 대화를 하면서 피로룰 풀었지요.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탔습니다. 이때 운전자 임 씨, 조수석엔 권 씨, 뒷좌석 우측에 저, 뒷좌석 좌측에 송 씨가 자리를 잡았지요.(차주 임 씨는 평소에도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차를 타고 출발함과 동시에 차 안의 불이 꺼졌고 조수석에 앉은 권 씨는 벌써부터 졸기 시작했습니다. 뒷자리의 송 씨와 저는 얘기를 하면서 오던 중 운전자가 길을 잘못 왔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갈래 길에서 우회전해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직진을 했다며 부득이하게 유턴을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유턴을 하기 위해서 저는 차 유리문을 열고 운전자 임 씨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때 제 옆자리의 송 씨가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송 씨가 차에서 내린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우리들은 그대로 차를 유턴해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차에서 내린 송 씨는 볼일을 보고 있었는데 차가 서서히 출발하니 깜짝 놀랐나 봅니다. 볼일을 보다 말고 같이 가자고 외쳤다는데 차 안의 사람들은 아무도 못 듣고 달린 것입니다. 송 씨는 '장난으로 조금 가다가 서겠지' 생각하면서 차를 따라 갔지만 차는 더욱 속도를 내면서 가더랍니다.

송 씨도 마라톤을 하던 근성으로 전력질주 했지만 따라잡지 못했고, 차의 불빛은 점점 멀어져 끝내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차를 놓친 송 씨는 허탈함, 배신감, 서러움, 공포감에 뛰기 시작했답니다. 어두운 시골 길에서 하염없이 뛰고 뛰다 지쳐서 걸어가기도 하고 또 소리도 쳤답니다. 그렇게 20, 30분 왔을까. 옆자리 송 씨의 인기척이 없어 저는 눈을 감은 상태로 송 씨를 향해 손을 뻗어보니 감각이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깜짝 놀라서 실내등을 켜고 아무리 봐도 옆에 있어야 할 송 씨가 없었습니다. 운전자에게 송 씨가 자리에 없다고 하니 무슨 잠꼬대를 그렇게 하느냐며 깔깔거리면서 농담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내 뒷자리를 확인하고서야 차를 급히 세웠습니다. 송 씨를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고 동료를 잃어버렸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처음 유턴한 그곳으로 다시 가기로 했습니다. 긴장된 마음으로 송 씨를 빨리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송 씨도 도로를 따라 걸어오다가 저 멀리 차 불빛이 희미하게 보이는 걸 발견했답니다. 자기를 찾으러 온다고 생각하자 분노와 미움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도로에 서서 차가 멈추기를 기다렸답니다. 하지만 차가 전속력으로 지나가 버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시 돌아올 줄 알고 아무리 기다려도 차는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세 명은 전방을 주시하면서 갔지만 송 씨가 도로 위를 걷고 있는 걸 아무도 보지 못하고 지나쳐서 두 번째 실수를 했지요.

우리들은 최초 유턴하던 곳에 가서 송 씨를 볼렀지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밤은 자꾸 깊어만 가고 송 씨는 행방불명입니다. 우리들만 집으로 갈 수는 없으니 다시 차를 돌렸습니다. 그렇게 다시 차를 돌려 천천히 속도를 내지 않고 왔음에도 또 송 씨가 도로 위를 걸어가는 모습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번에도 송 씨는 차를 세우라고 손도 흔들고 큰소리로 불렀는데 우리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그렇게 세 번째 실수를 했지요. 한참을 달려와서 어느 동네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그쪽에서 오는 차를 일일이 막아 세워 확인했지만 송 씨는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대만 더 확인하고 실종신고를 하기로 하고 기다리는데 한참 후 트럭 한 대가 들어오더군요. 우리 세 명은 도로를 막고 차를 세웠습니다. 트럭 운전기사 옆에 낯익은 사람이 보였고 송 씨가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찾았는데….

차에서 내린 송 씨는 한동안 멍하니 정신 나간 사람처럼 서 있었습니다. 트럭기사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송 씨와 우리 세 명은 주위에 있는 동네 구멍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아무 사고 없이 다시 만나 서로 오해했던 마음을 풀고 만취가 되었지요. 집에서는 등산 갔던 가장들을 기다리며 저녁식사도 하지 않고 걱정하면서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우리가 만취한 채 들어가니 분노가 폭발 직전이었습니다. 가족들을 진정시키고 몇 시간 전의 사정을 하나하나 설명하니 배꼽을 잡고 웃더군요.

지금도 그때 겪은 일을 생각하면 송 씨에게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지요. 지금은 모두 정년퇴직해서 잘살고 있습니다. 특히 송 씨는 매출 30억원이 넘는 기업가가 되었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여유 있는 마음으로 매사를 한 번 더 생각하면서 우리 같이 세상을 살아가요.

이제규(칠곡군 석적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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