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서울서 자랐고 경기도 수원을 고향과 정치적 근거지로 둔 서울 수도권 사람이다. 경기도 수원에서 내리 5선에 성공했고 여세를 몰아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성공한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수도 이전론을 들고 나왔다.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자는 거다. 서울 사람인데, 경기도지사인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주장을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당 인사가 제기한 게 아니라 새누리당 소속 광역단체장이 들고 나섰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개헌론과 함께 수도 이전론은 내년 대선에서 주요 이슈가 될 공산이 크다. 야권 대선주자들까지 동조하고 나서 이슈파이팅에 성공한 것이다. 당연히 수도 이전이 화제가 됐다. 지방분권론자이기도 한 남 지사는 수도 이전이 지방분권과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명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될 것이라며 그 방법밖에는 정체 상태에 있는 대한민국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남 지사와의 인터뷰는 그가 경북대에서 토크콘서트를 가진 지난 7일 있었다. 장소도 경북대 사회과학대학 학장실로 잡았다. 만남의 시간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인터뷰를 가진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대구공항과 K2 동시 통합 발표가 있었고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의 성주 배치 발표로 동네가 발칵 뒤집히는 일도 있었다. 남 지사의 생각을 추가로 물었다.
-국회의원 83%가 어떤 식으로든 87년 체제의 개편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만 열심이다. 또 권력 체계에만 집중된 개헌론에 대한 비판이 많다. 개헌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개헌해야 한다. 원칙론에서는 찬성이다. 그러나 단기간에 이루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내년 대선 기간 중 정당과 대선 후보들이 개헌에 대한 입장을 구체적이고 명확히 밝히고, 공약으로 정해 공론화하여 국민적 선택을 받은 대통령이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 개헌 이슈를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논쟁하는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에 논쟁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 '실제 삶'과 연계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가지고 개헌 논의를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헌보다 선거제도 개선이 더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은데.
▶20대 국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선거구제 개편이라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그리고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통한 정당 후보 공천의 투명성 제고 등이 요체가 돼야 한다. 총선 민심은 양당제를 그만하고, 영호남에서 한 당이 독식했던 것 깨라는 것이었다. 총선의 민심을 받아들여 정개특위를 구성해서 선거구제 개편을 논의해야 할 때이다. 그러면 국민들로부터 박수 받을 것이고 그 후에 개헌 논의도 가능할 것이다.
-'수도 이전'론을 내놓았다. 반향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반발도 만만치 않을텐데.
▶저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태로 그냥 갈 것인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현재의 기득권 구조를 깨야 한다. 서울에 정치와 경제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구조에서는 주택'교통'교육'환경 문제 등 여러 사회적 모순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 해결 방법은 정치와 경제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 수도 이전이다. 또 지방분권이다. 이를 통한 균형 발전 만이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 처방이라고 확신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이 좌절된 이후 잊혀졌던 일인데 다시 제기한 이유가 있나?
▶2010년, 국회의원 시절에도 청와대와 국회, 대법원을 옮기는 수도 이전을 제안한 바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수술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을 '리빌딩'해야 한다고 본다. 기득권을 깨고 대한민국 공간을 재구성해야 한다. 청와대'국회는 정치 기득권의 상징이다. 권력이 모이는 곳에 사람도 몰리는 법이다. '공간의 구조조정'을 통해 '권력의 구조조정'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정치와 경제 권력을 분리해 사회적 모순을 해결해 나가자는 것이 내 주장의 핵심이다. (남 지사의 수도 이전론에 대해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도, 안희정 충남지사도 동의를 표시했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최근 '국가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대책으로 진지하게 모색해 볼 문제'라며 긍정적으로 수긍한 바 있다.)
-이해찬 의원이 국회와 정부의 비효율을 이유로 세종시에 국회 분원 설치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는데 수도 이전과 무엇이 다른가?
▶이 법안에는 반대한다. 세종시에 국회 분원을 설치하는 것은 중병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의 근본적 치유책이 될 수 없다.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시로 옮겨 세종시를 정치와 행정수도로 만드는 것이 올바른 해답이다.
-이런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서울이라는 공간에 정치'경제가 하나로 얽히고설켜 있다. 2020년에 경기도 인구는 1천700만 명, 수도권 인구는 3천만 명이 될 전망이다. 전 국민의 60%가 수도권에 모여 사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이대로는 수도권 주민도 국민 모두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주택난이 더 심각해질 것이고 출퇴근 전쟁, 사교육비 문제, 환경문제 등도 해결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수도 이전을 새누리당이 대선 공약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이 기득권만을 지키고 대변하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면 국민들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새누리당이 주도해서 하자는 건 기득권을 가진 여당이기 때문이다. 만일 충청도에서 먼저 수도 이전을 주장했다면 지금 같은 반응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수도권의 중심이자 기득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경기도에서 수도 이전을 주장하니까 다들 주목하는 것 아니냐. 이게 정답이다. 기득권층이 양보하고 앞장서야 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항 공항인 대구국제공항과 군사 공항인 K2의 동시 이전을 발표했다.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후속조치로 보입니다만.
▶국가적 대계를 추진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치 리더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공항 문제는 결국 갈등만을 양산하고 결론은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허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번 신공항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치 리더십의 능력과 의무는 국론 결정 과정에서 소통하며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면서 하나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10년을 끌고 끌어서 결국 이렇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옳은 것인지 국민들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국가 정책의 결정 과정에서 국민들께 충분히 소통하고 정보를 공개하고 소상히 설명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신공항 결정 과정은 그런 측면에서 너무 오래 걸린 반면,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다 보니 많은 분들이 아쉬움을 느끼셨던 것이다. 이해관계가 걸린 정책 결정 과정은 신중한 검토와 신속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기도 북부의 테크노밸리 선정 과정을 그렇게 했다. 신공항 문제를 보면서 얻은 교훈이었다. 유치 경쟁이 치열했지만 예상 밖으로 후유증도 없었다.
-사드의 성주 배치 발표로 난리가 났다. 대통령이 부재중인 때에 국무총리가 사실상 감금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앞으로도 정부는 강경하게 밀어붙이고 주민은 반대한다면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데.
▶정부가 하루속히 사드 배치에 대한 분명하고도 솔직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배치의 필요성과 불가피성에 대해서도 설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성주로 선정한 이유 등을 국민들께 소상히 설명드리고 동의를 얻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특히 해당 지역 주민들을 빨리 설득하고 소통을 해야 하는 노력을 더해야 한다. 국가 안보를 위해 대한민국 어디엔가는 사드 배치가 필요한 것이라면 분명한 설득의 과정, 왜 이게 여기에 필요한지에 대해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이 있어야 하고 최소한 건강상'신체상의 피해, 재산상의 피해, 이런 것에 대한 충분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대선을 1년 5개월여 앞두고 있지만 여야 모두 뚜렷한 주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내년 대선을 어떻게 보는가?
▶내년 대선에서는 '연정'이 정치적 어젠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협력하라'가 다음 대선의 시대정신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총선 민의는 어느 당에게도 과반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어느 당이 집권해도 여소야대 상황에서 각 당 후보자들의 연정에 대한 입장과 담론이 이어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선 후보로 연정합의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나왔으면 한다. 경기도에서 연정을 해 본 경험상 권력은 나눌수록 커지는 것 같더라. 선거 승패와 관계없이 상대방을 지지하는 국민의 뜻을 담을 수 있는 정치력과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됐으면 한다.
-새누리당 내 친박 일각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대망론이 있는 것 같다. 반 총장의 대선 도전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새누리당 또는 대한민국에 대통령 후보가 많아지는 것은 좋은 일이고 환영한다. 다만, 정치판에 들어와서 정치 리더십을 만들고 끝까지 완주하느냐는 본인이 결정해야 할 일이다. 또한, 당내 대선 후보로 나서기 위해서는 민주적 절차에 따른 검증과 합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란 자리는 날을 잘 갈아놓은 작두 위를 맨발로 걸어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혼자 걷는 것도 아니고 자기 가족 다 짊어지고 걷는 것이다. 그러한 준비와 결단이 되어 있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대선 출마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결심을 굳힌 것인가?
▶대선 출마 여부는 내년에 결정하려고 한다. 정치인의 꿈이 대통령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일 것이다. 현재 대선 출마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경기도지사로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우선 경기도를 리빌딩하는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그다음이 대한민국 리빌딩이다. 청년실업, 저출산, 저성장 등 국가적 난제가 산적해 있다. 도지사로서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성과를 내서 도민과 국민들로부터 평가받으면, 대권 도전 등 결과는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누리당 상황이 갈수록 더 나빠지고 있다. 정말 정권 재창출은 물 건너가는 건 아닌가?
▶깨진 바가지에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법이다. 깨진 바가지에 물이 새고 있는데 다른 이야기가 통할 수 없다. 이제는 당이 어떻게 화합하고 혁신할까 총의를 모아야 할 때이다. 또 외연을 넓혀야 하는데 오히려 외연이 줄어들었다. 새누리당이 혁신의 길로 가지 않으면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보수 세력 전체의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 또한 기득권을 깨고,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를 먼저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판문점 핫라인 등 남북 간에는 연결 고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지금 남북의 상황에 대해 진단을 해달라.
▶북한의 핵 도발로 남북 관계가 경색되고 있어 안타깝다. 나는 개성공단 폐쇄에는 반대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미 우리 정부는 국제 사회와 공조해 개성공단 폐쇄 등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의 길에 들어선 뒤였다. 북한을 압박해 핵을 포기하도록 하는 정부의 정책을 돌이킨다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다, 그래서 개성공단 정상화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한, 북한 핵 해결을 위해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들과 오래전부터 교류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 대한민국 통일과 북핵 해결이 중국의 국익에도 부합한다는 논리를 가지고 협조하도록 설득을 벌이고 있다. '북핵이 있으면서 분단된 대한민국과, 북핵이 없으면서 통일된 대한민국 중, 어느 것이 중국의 국익에 부합할까?'하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지속적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한반도 비핵화가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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