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아버지와 '빽'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장남 제임스 루스벨트는 평발이었다. 그는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하자 훈련이 고되다는 해병대에 지원했다. 일반 군인들은 군화를 신어야 했지만 평발인 제임스에게는 스니커즈를 신는 것이 허용됐다.

제임스가 배속된 곳은 태평양상 일본군 기지를 습격하기 위해 창설한 해병 기습대대였다. 대대장은 칼슨 중령이, 부대대장은 제임스 루스벨트 소령이 맡았다. 부대의 첫 임무는 일본군이 점령한 태평양상 메이킨 환초를 찾는 것이었다. 미 해병대는 이 작전을 위해 두 달간 피나는 훈련을 했다.

하지만 D-데이를 앞두고 칼슨은 니미츠 제독에게 '현직 대통령의 아들인 제임스를 작전에 참가시키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일본군의 포로가 되거나 전사하게 되면 일본군이 이를 전쟁에 이용할 것"이란 이유였다. 제독도 받아들였다.

당사자인 제임스는 완강하게 반발했지만 상급자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제임스는 '빽'을 쓰기로 했다. 아버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도움을 청했다. 자신을 전쟁터로 보내 달라고 했다. 루스벨트는 즉각 움직였다. "내 아들이 위험한 기습작전에 가지 않는다면 누가 가겠는가." 전쟁터로 가겠다는 아들을 만류하기는커녕 '내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라'고 지시했다. '빽'이 통한 것이다. 제임스는 메이킨 전투에 참가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공을 세워 해군십자훈장을 받았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아들의 병역 특혜 논란까지 겹쳐 궁지에 몰렸다. 의무경찰로 복무 중인 아들은 지난해 정부서울청사 경비대에 배치됐지만 2개월 만에 서울경찰청 운전병으로 전출됐다. 서울청 운전병은 선호도가 높아 소위 '꽃보직'으로 불리는 곳이다. 전입 4개월이 지나야 전보가 가능한 의경 인사 배치 규정은 무시됐다. 수석의 아들을 운전병으로 받은 당시 경비부장은 경무관으로 승진해 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들 역시 따라갔다. '빽'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래도 청와대는 물론 그 누구도 '빽'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힘센 아버지는 오히려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내부자'에 들지 못한, 개'돼지 소리를 듣는 국민들만 '빽' 냄새를 맡는 모양이다. 미국의 '빽'과 한국의 '빽'이 이토록 달리 사용되는지 그동안 몰라도 너무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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