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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까지 동아시아인은 '백인'으로 불렸다…『황인종의 탄생』

황인종의 탄생/마이클 키벅 지음/이효석 옮김/현암사 펴냄

우리나라 사람의 피부색은 황색일까? 햇빛에 그을려 구릿빛인 사람들도 꽤 있지만, 다수 국민들은 피부가 희거나 다소 불그스름하다. 희기로 치자면 웬만한 백인보다 한국인이 더 희다. 여성은 더 그렇다. 중국인과 일본인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들은 왜 '황인종'으로 분류되는 것일까.

이 책은 아시아인이 어째서 황인종으로 분류됐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그 이면에 근대 유럽인들이 필사적인 경계 짓기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책은 '19세기 이전 문헌에서 황색을 사람 피부와 연결해 이야기한 사례는 없다. 동아시아인의 피부가 황색이라는 관념은 19세기 이전에는 없었다. 황색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종적 지시어가 됐다'고 말한다.

18세기 말까지 유럽에서는 오늘날 '인종'이라고 부르는 구별이 없었다. 피부색보다는 종교, 언어, 의상, 사회관습 등이 훨씬 중요하고 의미 있는 지표로 간주됐다.

당시까지 유럽인들 눈에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사람은 '백인'(bianca)이었다. 마르코 폴로와 같은 여행자들 눈에 동아시아 사람은 '하얀 사람'이었다. 1330년경 중국을 방문한 선교사 오도리크는 자신의 여행기에 남중국 사람들을 '백색이라기보다 창백하다'고 표현했다. 포르투갈 선원들은 동양에서 온 사람들을 보고 '동양에는 포르투갈의 배만큼 거대한 배가 있고, 백인들(우리와 거의 비슷하게 대낮처럼 환한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승선해 있었다'고 묘사했다.

포르투갈 약재상 토메 피르스(1465?∼1524 또는 1540)가 작성한 '동방제국기'에는 '중국인은 우리처럼 백인이며 상당수가 무명과 비단을 입고 다닌다. 중국 여성들은 우리와 같은 백색이며 에스파냐 귀부인 같다'고 적고 있다.

인도에서 장기간 파견 근무를 했던 포르투갈 관료 두아르트 바르보자는 '중국의 거상들은 백인이며 풍채가 좋았다. 그 아내들 역시 미인이지만, 남녀 모두 눈이 작았다'고 보고서에 적고 있다. 피렌체 태생의 포르투갈 항해사였던 조반니 디 엠폴리는 '중국인은 백인이며 옷은 독일인처럼 입었다. 일본인들은 백인이고 옷을 잘 차려입었다'고 말했다.

당시까지 서구인들에게 동아시아인은 거의 예외 없이 '백색인'이었다. 자기들과는 다른 '백색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이르러 상황은 달라졌다. 수많은 동아시아 이주민들이 서구사회에 등장했고, 그에 따라 이들을 구분할 필요가 강하게 대두됐다.

아시아 출신들이 서구로 밀려들자 유럽인들은 '황화'(黃禍'yellow peril), 즉 황색은 위험하다는 개념을 창안하고 널리 퍼뜨렸다. 학문적 담론이나 대중적 읽을거리 등 상상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이 말을 사용했다. 그렇게 동아시아인은 황인종이 됐다.

지은이는 '(유럽인들에게) 아시아는 위험하고 이국적이며 위협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여기에는 아시아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침략과 문화적 기억이 있다. 즉 (아시아 또는 몽골족인) 훈족 왕 아틸라(?∼453)의 유럽 전역에 대한 침략과 지배, 칭기즈칸(1155?∼1227)의 침략과 지배, 지중해까지 정복한 중앙아시아 티무르(1336∼1405)를 상기시키는 말이었다'고 말한다.

중국에서는 황색이 예로부터 문화적으로 중요한 색이어서 '황인종'이라는 서구의 개념이 무난하고 행복하게 자리를 잡았다. 황색을 비하의 의미가 아니라 중국인의 정체성으로 인식한 것이다. 반면 일본인들은 황인종이니 몽골인종이니 하는 개념을 거부했다. 일본인들 눈에 '황인종'은 다른 아시아인, 특히 중국인을 설명하는 개념이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을 중국인과 같은 황인종이 아니라 백인종으로 여기고 싶어했다.

그러나 중국에서든 일본에서든 '서구의 인종적 패러다임'이 너무나 막강해 '황색'을 부정하는 학자들조차 자신들의 피부가 '백색'이 아닌 다른 색이라는 개념은 인정했다. 이전까지는 없었던 '피부색 패러다임' 자체를 받아들인 것이다.

지은이는 "피부색으로 '인종'을 범주화할 수 있다는 발상은 간편하지만 매우 위험하다. 우생학적 인종 학살을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다" 며 "인종 구분은 서구인들이 그들 피부색 외의 다른 사람들을 철저하게 구분 짓고 배척하는 과정이었다"고 지적한다. 348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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