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혼자 밥 먹고, 술 마시고…'혼자 놀기'의 사회학

대구시 중구의 한 음식점 점심 풍경. 손님의 절반 정도가
대구시 중구의 한 음식점 점심 풍경. 손님의 절반 정도가 '혼밥족'이다. 식당의 주인은 최근 솔로 손님의 비중이 30% 정도 된다고 귀띔했다. 박노익 기자 noik@msnet.co.kr

'빨간색 356, 노란색 156, 흰색 86…. 총 598개. 어, 600개가 아니네?' 몇 해 전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줬던 '콘택600 알갱이 세기'에 등장했던 내용이다. 당시 혼자 놀기는 방콕, 시체놀이처럼 비슷한 놀이를 탄생시키며 하류문화의 저변을 형성했다.

진화를 거듭해가던 은둔 속성은 어느 날 '혼밥, 혼술문화'로 우리 곁에 다가섰다. 사회학자들은 이 현상을 주목하고 연구의 영역으로 다루고 있다. 기업에서도 이들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을 내놓고 있다. 혼밥은 이제 더 이상 외톨이의 영역이나 폐쇄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문화의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주 '즐거운 주말'에서는 '혼밥, 혼술문화'로 대표되는 '혼자 놀기'의 사회적 행태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 사회현상이 된 '혼자 OO하기'

한때 은둔형 외톨이의 비(非)사회적 현상으로 여겨졌던 혼자 놀기는 최근 싱글족, 기러기 아빠 같은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사회현상으로 확산되었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문제는 혼밥 이후 나타난 여러 가지 유사현상의 출현이다. 홀로 식사에 익숙해진 싱글족들이 여러 곳에 응용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확산시켜 갔던 것이다.

식사 테이블에 반주가 곁들여지면서 혼술이 되고 울적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마이크를 잡으면 '혼곡'(노래)이 되는 것이다. '혼놀 레벨'을 정해 어색한 식사 도전부터 혼자 고기 굽기, 클럽서 춤추기까지 도전기를 공유하기도 한다. 혼놀의 진화는 어디까지일까.

◆혼밥, 사회학의 영역으로 들어오다

얼마 전 그룹 '신화'의 김동완이 패밀리레스토랑 혼밥 사진을 SNS에 올려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의 혼밥은 손님 출입이 빈번하고 노출 위험이 높아 혼밥 중에서도 상위 레벨에 속한다. '외모지상주의' 웹툰작가 박태준도 파스타집에서 2인분을 주문(역시 고난이도)하고 식사 과정을 인증샷으로 남겨 주목을 끌었다.

이제 혼밥은 연예인들도 대열에 들어설 만큼 일상이 됐다. 처음 사회학자들은 혼밥 현상을 ▷싱글족들의 증가에 의한 일부 사회 현상 ▷대인관계 스트레스에 의한 일부의 모임 기피 ▷경제적 고충 등으로 인한 선택으로 해석했었다. 즉 사회적 약자들의 '낯가림'이나 소수의 사회 부적응 정도로 이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미시적 접근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사회적 현상의 하나로, 대중의 라이프 스타일의 한 종류로 인정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반영해 다인 가족의 구성원들도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대인관계가 좋은 사람들도 치유나 힐링의 방법으로 혼밥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있다.

◆혼자 술 먹기 넘어 혼영'혼클까지

최근 한 취업포털사이트가 20대 1천277명에게 '혼자 노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지를 물었다. 응답자의 75%가 '거부감이 없다'고 대답했다. 젊은 층 4명 중 3명은 혼자 활동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다는 뜻이다. 이런 젊은 층의 의식이 반영되면서 혼놀 문화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혼밥, 혼술에 그쳤던 혼놀의 영역이 혼영(영화관 가기), 혼곡(노래방), 혼클(클럽서 춤추기)로 진화하고 있다.

지금 동성로나 대학가에서는 '동전노래방'이 성업하면서 혼곡을 즐기는 젊은 층의 발걸음도 잦아지고 있다. 동성로에서 만난 대학생 임모 씨는 "지인들과 노래방에 가면 억지로 분위기에 맞춰야 되고 선곡에도 신경이 쓰인다"며 "공부에 찌들 때 찾아와 서너 곡 뽑고 나면 스트레스가 싹 풀린다"고 말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CJ CGV에 따르면 지난해 영화표 한 장을 예매한 관객은 전체의 10% 선. 1인 관객이 두자릿수에 접어든 건 작년 이후 처음이다. 직장인 윤모 씨는 "매달 2, 3차례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편" 이라며 "심지어는 가족들과 함께 가서도 각자 취향대로 보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어차피 각자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뭘 볼까'로 의견을 맞추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나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임광규 영남대 강사(사회학 박사)는 "처음에 혼밥, 혼술에 어색해하던 싱글족들이 혼놀 문화에 익숙해지는 추세에 있다"고 말하고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문화현상으로 합리화하며 혼놀 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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