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가 스마트폰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2008년 쇠퇴하면서 핀란드 전체는 충격에 휩싸였다. 나라 전체 법인세의 23%를 담당했던 터라 노키아의 몰락은 곧 핀란드 경제의 추락을 의미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노키아의 몰락을 계기로 새로운 기반이 마련됐다. 무너진 노키아가 스타트업의 밀알이 되면서 벤처 생태계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노키아를 떠난 우수한 인력들은 핀란드 정부의 실업 급여를 바탕으로 스타트업 창업에 나섰다.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악으로 치닫는 우리나라의 상황에 핀란드의 사례를 접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동대구벤처밸리의 주역인 김현덕(46) 대구 스마트벤처창업학교장을 만나 해법을 물어봤다.
◆청년실업, 끝이 보이지 않는다
김현덕 대구 스마트벤처창업학교장은 사상 최악으로 치닫는 우리나라 청년실업 문제가 걱정이라고 했다. 김 학교장은 "2010년대 접어들어 전 세계적으로 전체 고용상황이 좋지 않고, 특히 청년실업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며, "선진국일수록 노동생산성 향상이 빨라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노력해도 이런 추세를 뒤엎고 단기간에 일자리를 늘리기가 쉽지 않은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학 진학률과 학사학위 취득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데다, 청년들이 대기업, 공무원 등 소수 특정 직종에 취업 선호가 편중돼 국민들이 체감하는 청년고용 상황은 통계치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늘리고, 졸업 후 대기업'공무원 취업이라는 제한된 진로를 다양화하는 등의 장'단기 대책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고용시장의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전 세계 공통현상이다. 그는 "저유가와 세계 경제 둔화로 인해 전 세계 주요국가의 고용상황이 앞으로 나아지리라 전망하는 전문가나 보고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창업이 해답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학교장은 창업이 청년고용시장을 활성화하는 해답이라고 조언했다. 창업 활성화는 신성장동력 창출과 일자리 증대라는 두 가지 긍정적 요소를 가지고 있어서 사실상 고용문제 전반에 관한 이상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나라가 창업 지원에 집중하고 있어요. 창업이 활성화되면 신생기업의 등장과 함께 전에 없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고, 여기에 더해 고용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김 학교장은 중국의 알리바바를 좋은 예로 들었다. 1999년 창업한 알리바바는 선진국의 단순 하청 제조업 위주였던 중국에 전자상거래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직접 고용만 3만5천 명을 달성했다는 것.
핀란드의 노키아나 미국의 코닥도 유사한 사례다. 코닥의 경우 도시 경제의 대부분을 차치해 '스냅샷시티'(Snapshot City)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던 미국 뉴욕주 북부의 로체스터시는 코닥의 파산으로 6만 명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창업을 통해 도시의 위기를 극복했고, 이는 뉴욕타임즈에 소개될 정도로 큰 성공으로 이어졌다.
"미국 시가총액 1~3위 기업인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두 창업기업이고, 재벌 중심인 일본에서도 창업기업인 소프트뱅크가 쑥쑥 성장하고 있어요. 중국에서는 텐센트, 바이두, 알리바바와 같은 창업기업들이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의 이미지는 첨단서비스 국가로 탈바꿈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매년 창업하는 대학생이 40만 명이 넘고, 창업을 위해 귀국하는 유학생 전용 창업단지만 약 300개에 달하는 등 중국경제의 성장에 창업기업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요."
◆대구 스마트벤처창업학교의 기적
지역 청년들에게 창업의 기회를 주기 위해 지난 2013년 문을 연 대구 스마트벤처창업학교는 그동안 수많은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만 3년 동안 3기, 167개 팀이 졸업했다. 또 창업기업 대표를 제외한 미창업자로 입학해 이후 창업한 기업이 현재까지 100여 개사에 이르는데다, 이들 회사에서 직접 고용한 청년들만 440명에 달하고 있다.
"대학을 막 졸업한 후 창업해서 연매출 10억원을 올린 기업도 있고, 창업 6개월 만에 3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아 유명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받은 기업도 있어요. 통계로 나타나는 이런 실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대구 지역에서도 좋은 기업가를 육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시킨 점이 대구 스마트벤처창업학교의 성과라고 봅니다."
김 학교장의 얘기대로 대구 스마트벤처창업학교는 지역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취업 모멘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대구를 벗어나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여러 단계별 심사를 거쳐 창업학교 입학생을 선발하는데, 매년 입학 지원자 중 약 60~70% 정도가 대구경북이 아닌 다른 지역 출신입니다. 창업학교 졸업생 중 제1기 김태현 대표가 제주도 출신인데, 창업학교 입학 때문에 대구에 처음 와서 지금은 대구에 회사를 차렸어요. 전북 출신의 유석종 대표는 대구에서 창업해서 페이스북 팔로워만 38만 명에 달하는 마케팅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창업 삼분지계(三分之計)를 꿈꾼다
김 학교장의 머릿속에는 우리나라 창업지도를 삼등분하는 '창업 삼분지계'가 들어 있다. 국내 IT산업의 '메카'였던 서울 테헤란로,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경기도 판교와 더불어 대구 동대구벤처밸리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창업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창업기업의 집적과 협업 활성화는 창업 활성화와 성공률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기회형 창업은 여러 창업자가 함께 모여 교류하고 협업하는 것이 중요해요. 전 세계 창업자들이 누구나 미국 실리콘밸리에 가서 창업하고 싶은 희망을 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지요. 결국 대구의 창업생태계를 키우려면 동대구벤처밸리에 수많은 창업기업을 한데 모으는 등 집적규모를 키워야 합니다." 김 학교장은 "동대구벤처밸리에는 현재 150여 개의 창업기업이 있는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창업타운이 되려면 지금보다 4, 5배 정도 규모를 불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창업기업 규모를 불리는 동시에 창업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창업기업 간 교류 및 협업의 활성화, 엔젤투자 문화 활성화, 벤처투자사 상주, 체계적인 창업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이 김 학교장인 꼽은 동대구벤처밸리가 창업거점으로 도약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다.
동대구벤처밸리에는 창업기업을 돕는 많은 지원기관이 있다. 스마트벤처창업학교는 물론, 크리에이티브팩토리, 대구콘텐츠코리아랩,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등 창업지원기관과 대구테크노파크, 대구경북디자인센터, 상공회의소, 무역회관 등의 각종 기업지원기관이 밀집해 있는 것. 김 학교장은 이런 점이 동대구벤처밸리가 다른 지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강점이라고 소개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기관들이 한 지역에 집중돼 창업자들이 원하면 거의 모든 것을 지원할 수 있도록 구성된 것이 동대구벤처밸리 창업환경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창업을 위해 동대구벤처밸리를 찾는다면 어떠한 특수한 상황에 있더라도 대부분 지원받을 수 있는 환경이 구축돼 있지요."
김 학교장은 "분명 3년 전보다 대구의 창업 열기는 매우 뜨거워져 있다. 그러나 수도권에 비해 창업자, 투자자, 지원기관 등이 협업해 창업, 성장, 회수, 재투자'재도전이 지속적으로 선순환되는 창업생태계는 아직도 열악한 형편"이라며 "앞으로 대구시와 각종 지원기관 등과 머리를 맞대고 동대구벤처밸리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창업거점으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현덕 학교장은?
1970년 달성 유가면에서 태어나 대구 현풍고를 졸업했다.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전기 및 전자공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3년부터 경북대 전자공학부 전임강사로 임용돼 현재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4~2009년 대구테크노파크 모바일융합센터의 실장을 겸직했고, 2011년에는 '경북대학교-삼성전자 모바일공학 계약학과'를 설립해 초대 학과장을 역임했다. 2012년부터 '경북대학교 3D융합기술지원센터장'을 맡고 있으며, 2013년에는 '대구 스마트벤처창업학교장'으로 활동하면서 청년창업 지원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제3기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청년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개발 등의 업무도 맡고 있다. 모바일산업 및 콘텐츠 사업 육성에 기여한 공로로 산업통상자원부 및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표창과 대구시정 발전 공로로 대구시장표창 수상 경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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