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회장 대권 제안에 의형제 맺어
총선서 선전했으나 대선 출마는 불발
미 8군 기지 옮기지 말라 요청할 것
국가 안보 위해 서울 주둔이 바람직
지금으로부터 45년쯤 전의 일이다. 문학과지성사의 대표인 김병익 씨가 동아일보 기자이던 때 나에게 연재 칼럼을 써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원고 매수가 매우 적은 칼럼이어서 짧게 써야만 했다. 여러 개를 쓴 중에서 어느 하루 쓴 칼럼의 제목이 '내가 대통령이라면'이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기억되는 내용 일부는 "그 혹독하던 일본 군국주의하에서도 시인 홍로작이 '나는 왕이로소이다'라는 제목으로 시 한 수를 읊고도 무사하였거늘 오늘 민주사회에 사는 대장부가 '내가 대통령이라면'이라는 제목으로 짧은 글을 한 편 쓴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는 넋두리로 시작된 칼럼이었으나 그 당시에는 동아일보에 실리지 못했고 그 뒤에 '길은 우리 앞에 있다'는 내 책에 수록되었으나 그 책이 또한 판매금지 되어 읽은 사람이 몇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뒤에 나는 남산에 있던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구속되어 파란만장한 생을 살 수밖에 없었고 군사재판도 받고 징역도 살고 대학에서는 '추방'당하고 서러운 세월을 보냈다. '10'26사태'가 벌어졌고 박정희 뒤에는 전두환'노태우가 등장하였고 '광주사태'가 터졌고, 김영삼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는 '기적'도 벌어지지 않았던가? 그가 야당을 버리고 여당으로 들어가 대통령이 되는 바람에 야권이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되어서, 김영삼을 따라 노태우 밑으로 가기를 거부한 이기택만 남았는데 '역부족'으로 야권의 왕좌를 지키지 못하여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었고, 5년 임기를 연장할 묘안이 없었기 때문에 아들 같은 노무현에게 양위하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인가? 그 글을 쓴 것은 1971년이나 72년 일일 것인데 그로부터 20년쯤 지난 어느 날 현대의 회장 정주영이 나를 만나고 싶다 하여 시내 모처에서 단둘이 '비밀회담'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정주영이 나더러 "김 교수, 정치가 썩으니 사업도 하기 어려워요. 우리가 손잡고 정치를 합시다. 돈은 내가 벌어서 가지고 있으니 남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대통령 후보로는 인기가 높은 김 교수가 나가야 해요". 그렇게 다짐하고 그가 가지고 온 '의형제 증서'에 나는 도장이 없어서 지장을 찍었다. 그 증서에는 이미 그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우리가 만든 통일국민당은 뜻밖에 잘 되었다. 지역구에서 27명, 전국구를 합치고 타당에서 유입된 의원들도 여럿 있어서 40석이 넘었다. 나도 강남갑에서 출마하여 야당의 이중재, 여당의 황병태를 압도적으로 이기고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주변에서 정주영을 왕회장으로 모시는 사람들은 일제히 정 회장에게 간청하였을 것이다. "회장님이 출마해도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입니다." 정주영의 마음은 변했고 나는 대통령 후보 반열에서도 깨끗이 밀려났다. 그 뒤에 된 일은 누구나가 아는 바이다.
90이 다 된 나에게 지금 대통령 출마를 권면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오늘 내가 대통령이라면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미군은 용산에 있는 8군기지를 떠나서 평택으로 다 옮겨 갈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정부의 각 부처가 집을 짓고 들어오거나 아니면 민간인에게 매각하여 거대한 아파트촌이 되고 말 것이고 몇 놈이 큰돈 벌게 될 것이다. 내가 오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면 미군을 향해 떠나지 말라고 할 것이다. "앞으로 99년 한반도의 안보를 위해,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해, 서울 한복판에 미군이 자리 잡고 있기를 바란다. 6'25전쟁 때 이 땅에서 미국의 젊은이들은 피를 흘려 대한민국을 함께 지켰다. 전사자가 5만4천246명, 부상자가 10만3천284명, 실종자가 8천177명-그들은 우리의 혈맹이요 형제 아닌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의 연병장이었던 용산을 다 줘도 아깝지 않다. 99년 뒤에는 세계평화를 위해 연장할 수 있다. "중국이 가만있을까?" 걱정하지 말라. 중국이 미국 희생의 반이라도 대한민국을 위해 하기만 하면 강화도에 용산기지만 한 땅을 99년 쓰게 하겠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꼭 그렇게 하고 싶다. 이것 한 가지만은 하고야 청와대를 떠날 것이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