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작은 전쟁

이경호 수성구립도서관 회원

오랜 객지 생활 끝에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내려왔다. 비록 고향이지만 여러 가지가 생소하고 낯선 부분도 적지 않았다. 이때 발견한 지역의 도서관들은 내게 오아시스와 같은 소중한 존재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는 날은 언제나 설렘과 작은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안타까운 광경을 자주 목격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소리 없는 작은 전쟁이다. 개인 학습을 하는 학생이나 취업 준비생들이 이를 금지하려는 도서관 사서들과 벌이는 크고 작은 마찰들을 도서관 이곳저곳에서 빈번히 볼 수 있다.

과연 도서관에 와서 개인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막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허용하는 것이 옳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물론 무제한의 공간이 제공되어 독서를 하는 시민과 개인 학습자를 모두 수용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공간적 제약은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 지역 도서관의 개인 학습자와 관련한 안내문에서는 "지역민들에게 균등한 독서활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일반열람실보다는 독서 공간 확충, 평생교육의 기회 제공 등 도서관 본연의 기능을 강화하고자 한다"고 도서관의 역할을 정해 놓고 있다.

즉 도서관은 '공부방'이나 '독서실' 등과 같은 개인 학습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도서와 콘텐츠를 이용하려는 시민들을 위한 '자료 중심의 문화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는 시민들을 위한 공공성과 편의성 그리고 지역 경쟁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매우 타당하고 유익한 취지라고 생각한다. 만약 개인 학습을 허용하게 된다면 도서관은 열람시간 내내 개인 학습자로 꽉 차 버릴 것이고, 지금 규정을 어기면서 이용하는 개인 학습자들은 도리어 자리 확보를 위해 엄청난 경쟁을 치러야 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하다.

며칠 전에는 남자 중학생 둘이 도서관 입구에 와서는 쭈뼛쭈뼛하더니 '개인학습금지'라는 입구의 안내문을 보고는 아쉬운 표정으로 발길을 되돌리는 모습도 보았다. 이렇듯 규칙을 지키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보고,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은 이익을 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건강하지 못한 한 모습을 여기서도 보게 되는 것 같아 씁쓸하게 느껴졌다. 마치 멋진 축구장을 만들어 놓았더니 야구하는 사람들이 와서 축구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 자기들은 야구를 하겠다고 요구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이제 세상은 암기력이나 지식의 총량이 아닌 상상력과 창의성이 경쟁력이자 성장 동력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신장시키는 방법으로 독서 즉 '책을 읽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독서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평균 이하이며, 유엔 가입국 중에서도 하위 그룹에 속한다. 더욱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독서 인구와 독서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렇게 저조한 우리의 독서력은 상상력과 창의성을 빈약하게 하고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도미노 현상을 가져 온다. 따라서 독서력을 높이는 것은 개인의 행복뿐 아니라 미래의 우리 삶을 향상시키는 매우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도서관에서 개인 학습을 하는 학생이나 취업 준비생들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행동이 다수의 선량한 학생과 시민들에게 도리어 불이익을 주고 있으며, 또한 도서관이란 국민 독서력 향상을 위한 매우 중요한 공익적 인프라라는 성숙한 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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