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소리 지르는 사회

갓난아기는 자주 운다.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가 젖었거나 아픈 데가 있거나…, 요구가 모두 다름에도 오직 울 뿐이다. 말로 자기 처지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까닭에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우는 횟수는 현저히 줄어든다. 대신 아프다, 배고프다, 불편하다고 말을 한다.

다짜고짜 고함부터 질러대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전달할 능력이 부족하거나,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해서는 상대방이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런 사람들은 그 자신도 타인의 낮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꼭 소리를 질러야 듣는다.

시끄러운 음식점에 가면 목소리가 높아진다. 잡음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다 보니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고, 이제 모든 목소리는 잡음이 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자면 모두가 목소리를 낮춰야 하지만 사람들은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다. 여기에는 타인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내가 목소리를 낮춘다고 해도 상대가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다면 내 목소리만 묻힌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사전에 허락을 구하기보다 사후에 용서를 구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일단 저질러놓은 다음, 타협하는 쪽이 더 쉬울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일을 저지른 후에 용서를 구하는 태도는 도덕적이지 않고, 지성적이지도 문명적이지도 않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간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사전 허락을 구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를 성주에 배치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는 다 큰 사람이 다짜고짜 고함부터 질러댄 행위에 해당한다. 사전에 사드 배치의 필요성과 안전성, 적소(適所)조건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니 일단 저질러놓고 이해를 구해보겠다는 태도다.

정부는 어째서 낮은 목소리로 차근차근 대화하는 대신 다짜고짜 소리를 질러댄 것일까? 여기서 한국사회의 민낯이 드러난다.

정부가 대뜸 고함부터 질러댄 데는 첫째, 국민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아무리 설명해도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해당 지역은 반대부터 하고 나설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둘째는 정부 스스로 국민에게 사드 배치의 필요성과 안전성, 적소조건에 대해 설득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고함부터 질러댄 정부의 접근 방식이 결과적으로는 옳을지도 모른다. 정부로서는 어쩌면 최선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이런 방식은 도덕적이지도, 문명적이지도 않다.

한쪽이 고함을 지르면, 바보가 아닌 이상 상대도 맞고함을 지르기 마련이다. 지금 사드 사태가 이를 잘 보여준다. 모두가 목청을 높이기 시작하면 종국에는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시끄러운 음식점에서 우리는 그런 상황에 자주 직면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자타가 목소리를 낮춰야 하지만, 어느 쪽도 먼저 목소리를 낮추지 않는다. 타인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자분자분 대화를 나눠야 할 사람들이 고함을 질러대니, 그 틈을 타 얼치기 전문가들이 나타나 무책임한 언어를 쏟아낸다.

천안함이 침몰됐을 때는 시중의 어중이떠중이가 모두 화약'폭파 전문가였고, 세월호 사건 때는 모두가 해양 구조 전문가였다. 사드 사태가 터지니 모두가 전자파 전문가이고, 미사일 전문가이다. 이렇게 어중이떠중이가 나서니 진짜 목소리를 내야 할 사람들은 입을 다물어 버린다. 낮은 목소리로 대화할 줄 모르는 사회가 낳은 비극이다.

'우는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대명천지를 활보한다. 그런 문화이니 뒤따라오던 자동차에 범퍼가 살짝 부딪혔을 뿐인데도 목덜미를 부여잡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자동차에서 내린다. 4천 년 역사니 5천 년 역사니 하지만 한국사회의 전반적 수준은 바닥에 드러누워 막무가내로 떼쓰는 꼬맹이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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