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의 향기] 63토끼들의 비전과 사랑

63 토끼띠의 살아가는 이야기

1963년 토끼띠 친구들의 일상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20대부터 40대가 될 때까지 폭력조직에 빠져 교도소를 들락거렸던 작가 조진복과 전국에 흩어져 있는 그의 '63년 토끼띠' 친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다.

1963년생, 우리나라 나이로 54세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일 수 있으나 한세상을 적나라하게 경험했을 나이는 됐다.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한두 가지 사연을 가지고 있고, 억척스럽게 하루를 살아내느라 기진맥진하지만 아침이면 어김없이 일터로 나간다. 50여 년 써먹은 몸은 피로를 호소하지만, 아직은 더 부려야 한다. 키워야 할 자식이 있고, 보살펴야 할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가신 지 5년이 된 어머니로부터 국제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약한 치매를 앓고 계신다.

"야야, 우석 애비야. 밥은 제대로 챙겨 먹느냐. 으잉?"

어머니는 벌써 울먹울먹하신다. 나도 목이 멘다. 하지만 이를 꽉 깨문다.

"어무이. 저는 아무 걱정할 끼 없심더. 몸도 건강하고예."

"야야, 우석 애비야. 내가 내년에는 니를 보러 갈꺼다. 쪼매만 더 고생해라. 내가 우야든동 너거 누나한테 집 한 채 살 돈 빼앗아갈 테니 그때까지 잘 있거래잉. 흑흑."

어머니 말씀에 숨이 턱턱 막힌다. 눈물이 볼을 타고 줄줄 흐른다. 당신에겐 아직도 이 불효막심한 놈밖에 없는 것이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제 한 몸 간수도 힘든 노모는 나이 50이 넘은 자식이 여전히 걱정이다. 50대 중반, 우리 사회의 중추인 나이지만, 부모 눈에는 여전히 불안하고, 모자라는 아이일 뿐이다. 지은이는 그렇게 이 땅의 '63년 토끼띠'들의 위치를 보여준다. 밖에서는 어른, 안에서는 여전히 아이인 위치 말이다. 492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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