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7월 보름은 우란분절(盂蘭盆節)이다. 하안거에 들어갔던 스님들은 이날 허물을 자자(自恣)하고 해제하는 날이다. 또 선망의 부모형제에게 공양을 올리는 날이다. 우란분절이라는 말은 울람바나(Ullambana)에서 왔다. 거꾸로 매달려 산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목련존자가 있었다. 효심이 지극한 목련은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타계하자 출가했다. 죽은 어머니가 지옥에서 혹심한 고통을 받고 있음을 알고 부처님께 구원을 요청했다.
부처님께서는 우란분절에는 사방 삼보에게 공양을 올리고 재(齋)를 지내고 나서 스스로 어머니를 구해 내기를 말씀하셨다. 재는 제사가 아니다. 정재(整齋)하고 맑고 깨끗한 음식과 신(身), 구(口), 의(意) 삼업을 깨끗이 하여 더 이상 악업을 짓지 말라는 것이다. 재는 재계의 의미이다. 음식을 차리고 공양 올리는 것도 재라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는 것을 재를 올린다고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사와 재는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영명 스님(904∼975)도 종경록에서 사유설(四有說)을 말씀하셨다. 처음 태어나면 생유(生有)요, 죽은 순간을 사유(死有)라 한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때가 중유(中有)이다. 지금 이렇게 활발하게 살아 숨쉬는 존재가 본유(本有)이다. 중유에서 다시 태어날 곳을 기다린다는 뜻에서 영가(靈駕)라고 하는데, 가(駕)는 자가용처럼 타고 간다는 의미와 존칭의 뜻을 가진다는 말이다.
'우란분절'과 '목련경'에도 재를 지내고 공양하면 그 공덕은 7대의 부모가 천도 된다고 했다. 어머니를 구원하고 공양하는 효행담을 벽화나 그림으로 그려 그 차이는 있지만 효행과 은중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가창 우록의 남지장사와 인봉마을의 북지장사는 모두 부모의 은혜에 보은하는 유산으로 아름다운 성소이다. 칠월 백중은 예로부터 선조와 부모에게 향화(香花)를 받는 기쁜 날이다. '지장보살본원경'은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도리천에 올라 설법한 내용을 담은 것이다.
김교각 스님(696∼794)은 신라 성덕왕의 아들로 태어나 출가해 지장 스님이 되었다. 중국에 입당하시어 왕실에서 흰 삽살개 선청이와 구화산 노호동에서 계셨다. 그때 신라에서 차(금지)와 벼씨(황립도), 그리고 솔씨(오차송)를 가져가 구화산에 뿌렸다.
자신이 가꾼 차를 마시며 고행 정진해 마침내 등신불이 되었다.
구화산은 중국의 4대 불교 성지이다. 해마다 70여만 명이 참배하기 위해 산을 오른다. 교각 스님은 지장보살의 지위에 올랐다. 지장보살은 비구가 보살이 되었기에 머리에 화관이 없고 스님처럼 깎은 민머리를 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생을 하나라도 남김없이 구제하고 그다음에 나는 성불하리라"고 원(願)을 세우신 분이 지장보살이다. 신라왕자 김교각은 왕자에서 비구로, 그리고 수행해 보살이 된 것이다.
이태백은 구화산을 참배하고 지장 스님을 찬탄하였다. "보살의 대자대비 끝없는 고해에서 구해줄 수 있었으나 스님은 홀로 오랜 세월 중생을 구해 주었는데 이 모든 곳은 지장보살의 자비였다네"라고.
지장 스님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단 한 줄의 기록도 없다. 다만 중국의 '송고승전'이나 '신승전'에만 나온다. '구화산창건화성사'에도 기록돼 있다. 스님은 우리나라 최초로 차시(茶詩)를 '전당시'(全唐詩)에 남겼으니 지금도 구화산에 오르면 그때의 차를 맛볼 수 있다.
(동자를 산 아래로 보내면서)
"암자적막해서 너는 집생각 나겠지 / 정든 절 떠나 구화산 내려가는 동자야 / 난간 오르내리며 죽마타기 좋아했었고 / 땅바닥에 앉아서 금모래도 모았었지 / 냇물로 병 채우고 달 불러 담더니 / 단지에 찻 물 끓이며 장난도 그만 두었네".
1999년 구화산에는 99m 높이의 김지장보살상이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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