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제대로 성숙 못 시키면 毒
깨끗하게 벌고 유익하게 쓰게 해야
투명하고 한국적인 염치 자본주의를
2011년 11월, '대구, 평생학습에 길을 묻다'는 연재물을 취재하러 일본과 영국을 갔을 때의 일이다. 세계 첫 평생학습도시인 일본 시즈오카현 가케가와시의 시장을 5번'26년 역임하면서 가케가와시를 평생교육'환경'건강명품도시로 만들었던 신무라 준이치 전 시장은 퇴임 후 가케가와시 보덕사(報德寺)에서 일본보덕운동본부 총회장을 맡고 있었다.
신무라 총회장이 주도하고 있는 일본 보덕운동은 한마디로 경제도덕운동이다. 보덕사 초입 좌우 대리석에 새겨진 도덕문(道德門), 경제문(經濟門) 석각(石刻)이 말하는 보덕운동은 지역(국가)에서 받은 은혜를 잊지 말고 되갚자는 생활실천운동이자, 놔두면 타락하기 십상인 자본주의에서 누구나 돈은 깨끗하게 벌고, 깨끗하게 번 돈은 유익하게 쓰자는 반(反) 타락 캠페인이다.
한때 세계적으로 지탄받던 일본 정치인'경제인들의 뇌물'부패스캔들은 일본인들에게 제대로 자본주의를 성숙시키지 못하면 나라를 망치게 하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자각을 주었다.
이렇게 보덕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가케가와시에서 공무원들이 일하는 방식과 시스템은 부정'편법'비리와는 거리가 멀다. 7년 전, 가케가와를 취재할 때 지원한 공무원은 평생학습마을만들기과 나카지마 계장이다. 나카지마 계장은 가케가와시가 운영하는 전기차를 몰고 다녔다. 우리나라처럼 취재 지원 공무원이 자기 차를 몰면서, 개인 돈으로 휘발유를 사고 식사 대접을 하면서 속으로 불만을 삭이는 일은 일절 없다.
취재 중 식사시간이 되면 필자와 동행한 사진기자를 식당까지 데려다 주고, 나카지마 계장은 혼자 끼니를 해결하고 와서 다시 만나 다음 일정으로 넘어가는 방식이었다. 커피나 차도 같이 마시지 않았다. 취재 지원은 하되, 개인이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는 사회구조를 만들었다. 아시아권에서 가장 먼저 자본주의에 눈뜬 일본은 이처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처럼 법으로 강제하기 전에 경제도덕운동을 통해 자본주의의 병폐를 씻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시작이다. 이미 체제 경쟁에서 공산주의를 압도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가장 단시간에 성공한 모델로 손꼽히는 우리나라는 속으로 썩고 있다. 염치를 잃지 않고 돈을 벌겠다는 청재(淸財) 정신은 희미해지고 '뭐니뭐니해도 머니가 최고'라는 맘모니즘(mammonism, 황금만능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어느새 대한민국은 천민자본주의의 독이 온몸에 퍼져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따라야 할 원칙과 절대로 넘어서면 안 될 금도가 있건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벤처 여검사, 주식대박 검사장, 편법 청와대 민정수석뿐 아니라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해관계에 얽히면 줄'편법'인맥'사기'내부자거래를 예사로 한다.
염치를 중하게 여기던 품격은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천민자본주의를 그냥 둘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9월 28일부터 시행될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이 그 첫걸음이다. 김영란법 때문에 당장 어려워지는 축산 농가, 농어민 등 여러 집단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양해의 말씀을 감히 드리면서 김영란법의 시행에 한 치의 망설임이나 거부감도 없어야 한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내 선에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한국식 염치 자본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착하게 번 내 돈으로 그들을 도우면서 같이 이 어려움을 헤쳐가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대한민국에 정착시킬 수 있다. 최상의 자본주의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이 남에게도 득이 되면 그게 최상이다. 두렵지만, 함께 투명한 대한민국을 향해 손잡고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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