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장 싼 메뉴가 5만5천원… 가게 망할 게 뻔해서 내놨어요"

김영란법 9월 시행 식당가 아우성

대구 수성구 두산동에서 고급 음식점을 운영하는 A(45) 씨는 보름 전부터 부동산 사무실을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9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식당 매출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돼 서둘러 가게를 정리하기 위해서다. 가게에서 가장 싼 메뉴가 5만5천원인데 김영란법이 규제하고 있는 한 끼 식사 상한선(3만원)을 도저히 맞춰낼 재간이 없다. A씨는 "가게 권리금이라도 제대로 받기 위해선 본격적으로 법이 시행되기 전에 처분해야 할 것 같다. 주위 식당 사장들도 눈치를 살피면서 업종 고민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영란법에 대해 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내려지면서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공무원, 사립학교 교원, 언론인 등 식사 회동이 많은 직군들이 벌써부터 몸을 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는 공무원,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과 가족 등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가 15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주방장으로 시작해 10여 년 만에 2호점까지 내는 등 나름 자수성가했다는 수성구의 한 횟집 B(46) 대표는 "대구가 서울이나 산업도시 등 경기가 좋은 것도 아닌 상황에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식당들의 줄폐업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식당 업주들의 심리적 압박감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고육지책으로 김영란법 메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구시청 인근의 한 고깃집은 최근 메뉴에 7천원짜리 갈비탕을 추가했다. 김영란법 적용으로 앞으로 공무원과 민원인들이 고기를 굽는 대신 값싼 메뉴를 찾을 게 뻔해서다. 이곳 식당 주인은 "월세가 비싼 시청 인근 식당들은 김영란법 메뉴로는 월세를 내기도 힘들다. 김영란법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영세 자영업자마저 생계를 위협받는 지경이 됐다"고 푸념했다.

식당들의 매출 감소는 결국 상권 위축을 부르고 부동산 침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상가의 경우 업종과 임대료 상관관계가 큰 데다 한번 상권이 무너지면 다시 회복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변변한 대기업 하나 없이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대구의 경우 들안길'두산동 등 지역의 간판격인 고급 식당 상권 위축이 인근 지역으로 도미노처럼 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벌써부터 일부 고급 식당들은 예약이 줄고 있고, 가게 권리금마저 빠지고 있다는 게 현장 분위기다. 1일 찾은 황금동'두산동과 들안길 등 고급 음식점 밀집가에서는 김영란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만성 불황에 견디다 못해 문을 걸어 잠갔고, 한 가게는 최근 고급 횟집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고깃집으로 업종 전환을 했다.

권오인 전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이사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기본적인 식사 접대조차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가뜩이나 어려운 대구 경기 상황을 볼 때 장기적으로 식당가 상권이 흔들릴 수 있다. 고급 음식점들을 중심으로 매물 러시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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