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밤, 선풍기 바람맞으며 책을 읽는다. 오래전에 사놓고 던져둔 2권을 들었는데 모두 미국 대통령에 관한 책이다. 대통령 역사가인 마이클 베슐로스의 '대통령의 용기'와 밥 돌 전 상원의원의 '대통령의 위트'다.
미국은 '대통령학'이라는 독특한 학문이 발달한 나라다. 역대 대통령의 평가, 업적 같은 무거운 주제부터 연애'인간관계 같은 시시콜콜한 신변잡기를 다룬 책이 엄청나게 많다. 미국인 특유의 자부심과 애국심이 가득한, 이런 책을 접할 때마다 계면쩍음과 질투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우리 미국인은 이렇게 현명하고 결단력 있는 대통령들을 많이 가졌으며 이렇게 민주주의를 꽃피웠노라고 자화자찬을 쏟아내니 한국 독자로서는 낯이 간지러울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용기'는 정치 생명을 걸고 중요한 순간에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 9명의 대통령을 소개했다. 그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 존 애덤스, 앤드루 잭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이다. 이들은 성인(聖人)이 아니라, 겁 많고 자기보호적인 정치인이다. 이들은 불속으로 뛰어드는 일을 가능하면 피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고민을 거듭하면서 후세에 칭찬받을 용기와 지혜를 발휘했다. 저자는 "이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미국은 2류국가로 전락했거나 아예 지구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43명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몇 명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무려 9명의 훌륭한 지도자를 가졌다는 점만 봐도 미국은 축복받은 나라다. 한국은 10명의 역대 대통령이 있지만 '용기와 지혜'를 발휘한 대통령이 있었는가? 분명히 있었다. 그런데 국민 누구나 공감하는 훌륭한 지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자신의 정파, 출신지에 따라 역대 대통령을 무조건 칭송하거나 비하하는 극단적인 평가만 있을 뿐이어서, 그 난도질에 멀쩡할 분이 있겠는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을 놓고 한쪽은 민족의 영웅이라고 떠받들고, 다른 한쪽은 독재자라고 깎아내린다. 균형감이나 이성적 평가는 없고 흑백논리만 존재한다. 이게 한국의 수준이고 현실이라면 서글프지 않은가.
'대통령의 위트'는 내용이 재미있지만, 저자인 밥 돌의 내공도 놀라웠다. 이 정도 안목과 재치에도 1996년 빌 클린턴에게 패해 대통령이 되지 못했으니 미국 정계의 두터운 인재풀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유머 정도에 따라 역대 43명의 대통령을 8개 그룹으로 분류했다. 유머의 최상위 그룹인 '경지에 이른 대통령'으로는 에이브러햄 링컨, 로널드 레이건, 프랭클린 루스벨트, 시어도어 루스벨트 4명을, 다음 상위 그룹으로는 캘빈 쿨리지, 존 F 케네디 2명을 꼽았다.
가장 뛰어난 유머 감각을 가진 대통령은 링컨이다. 링컨은 남북전쟁의 암흑기에 "나는 울면 안 되기 때문에 웃는다"고 했다. 단순한 유머를 경구(警句)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대통령이다.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유머가 뛰어난 대통령들이 가장 훌륭한 지도자 반열에 올라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당연한 귀결이라고 했다. 그들이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것은 인간성의 위대함, 뛰어난 균형감각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주사회의 통치력은 유머 감각과 직결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이 책을 읽으며 구중궁궐(九重宮闕) 같은 청와대에서 지내는 박근혜 대통령을 떠올려 본다. 국민이 박 대통령에게 느끼는 이미지는 고독함과 음울함이 아닐까 싶다. 홀로 고심하고 고독한 결단을 내리고 결연한 의지를 보이지만, 국민에게 제대로 와닿는 성과는 드물다. 아무리 작은 일이든 대중과 함께해야 빛이 나는 법이다. 사람들과 두루 만나 웃고 떠들고 유머를 날리는 대통령이 돼야 남은 1년 7개월을 보람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링컨의 유머를 인용한다. "여러분, 좀 웃어보세요. 저는 웃지 않으면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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