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잘라주세요." "네? 짧게요?" 미용사는 재차 물었지만 그녀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미용사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가운을 가져와 그녀의 목에 휘감았다. 여름의 습한 공기가 가운 속에 갇혀서 접힌 다리와 팔꿈치에 금세 땀이 맺히는 듯 불쾌했지만 그녀는 자세를 바로 하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부드럽게 분포되는 분무기의 물이 머리카락 위에 내려앉자 미용사는 가위로 뒤 머리카락부터 자르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미장원 안에는 가위 소리만 가득했다.
"사각, 사각, 사각…사각, 사각, 사각."
한참을 머리를 자르던 미용사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와… 정말 숱이 많으시네요? 건강하고." 누구보다 탐스러운 머리카락이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힘 있고 윤기가 넘쳤다. 그러나 그는 절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법이 없었다. 언젠가 딱 한 번 그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은 적이 있었다. 그녀의 부탁에 마지못해 한 것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는 이미 두 사람의 관계가 이미 9부 능선을 넘을 때쯤이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손길일지라도 그녀는 그 순간이 자신에게 각인되리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그녀의 인생에서 빠져나갔다. 그를 잊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의 몸에 새겨진 기억을 물리적으로 지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는 겨우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뿐이었다.
"아깝지 않으세요?" 미용사가 머리를 자르다 말고 물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작게 말했다. "금방 또 자라니까요." 머리카락이 자라나듯 머릿속에 그만큼 다른 생각들이 자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수고하셨습니다." 기른 시간이 무색할 만큼 자르는 일은 금방 끝이 났다. 너무 짧아진 머리가 어색해 자꾸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미용사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며 예쁘다고 몇 번이나 칭찬을 해주었다. 쭈뼛거리며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가는 도중 그녀의 시선이 바닥에 멈췄다. 잘린 머리카락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갑자기, 그녀의 가슴에 불이 일었다. 그동안 소중하게 간직해온 모든 추억들이 가위로 난도질당해 버려진 것 같았다.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느새 서러운 눈물이 잘린 머리카락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애처롭게 머리카락들을 어루만졌다.
"어머… 언니,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깜짝 놀란 미용사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끼억끼억 속울음을 삼키다 겨우 말했다. "불쌍해서요…머리카락이." 그녀는 아이처럼 떨고 있었다. 미용사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길을 잃어버린 듯 흔들리고 있었다. 미용사는 떨고 있는 그녀의 짧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머리는 금방 또 자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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