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주의보' 문자가 연일 휴대폰을 울리고 있다. 야외 활동의 한계 온도라는 33℃. 이 무더위를 비웃듯 무주구천동엔 전국에서 산꾼들이 몰려들었다. '등산도 더울수록 제 맛이지' 하며 아스팔트 위를 거침없이 걸어가는 일단의 무리. 폭염 주의보도 이들을 어찌 못하는 듯했다.
이런 원정대를 반갑게 맞이한 사람, 바로 엄홍길 대장이다. 최근 전국 대학생들과 155마일 휴전선 DMZ 종주를 마친 그는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은 상태서 바로 스틱을 잡고 무주로 달려왔다. 오르려는 의지와 도전 정신 앞에서 날씨는 그저 수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 행사였다.
◆폭염 뚫고 무주구천동에 1천여 명 집결
10좌째를 맞는 밀레 주최 '엄홍길과 함께하는 한국 명산 16좌' 행사에는 29일에도 전국에서 1천여 명이 참가했다. 이날 대구의 온도는 35도, 덕유산이 소재한 전북은 33도였다.
개회식 함성 소리와 함께 엄 대장이 무대에 올라섰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구릿빛 근육이 굴곡을 이룬 몸매는 잘 조각된 한 점의 '브론즈'를 연상케 했다. 엄 대장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자 여성들은 "섹시해요"로 응답했다.(뭐지, 같은 듯 다른 이 인사법은?)
그는 9일부터 23일까지 15일간 DMZ 평화통일 대장정을 다녀왔다. 14박 15일 동안 대학생들과 휴전선 155마일(350㎞)을 함께 걸으며 분단 조국의 역사적 현실과 통일 한국의 미래를 짚어 보자는 취지였다.
전국에서 7대 1의 경쟁률을 뚫은 대학생들이 하루 20㎞씩 걸었다고 한다. 어깨엔 남녀를 불문하고 15㎏의 배낭이 얹혀 있었다.
단상에서 엄 대장의 분단과 통일에 대한 열변은 점점 톤을 높여갔지만 여성 원정대들은 연사의 구릿빛 피부에만 마음을 뺏긴 듯 스마트폰만 들이댔다.
"여러분 제 몸을 보지 말고 제 말을 보세요. 제 근육만 담지 말고 제 말 속 안보와 통일의식도 카메라에 담으세요." 엄 대장이 우스갯소리를 남기고 연단을 내려갔다.
◆삼공리~백련사 구간에 '33경' 숨어
덕유산은 경남 거창, 함양군과 전북 장수군 경계에 우뚝 솟은 산이다. 덕(德)이 많고 너그러운(裕) 기운이 넘치는 산이라고 해서 이름이 붙었다.
예부터 지역의 시인, 묵객들은 나제(羅濟)통문에서 백련사에 이르는 28㎞ 구간에 '33경'을 명명했다. 구간 특성에 따라 소(沼), 담(潭), 탄(灘), 대(臺) 같은 이름을 붙였다.
구천동 하면 '동'(洞) 명칭 때문에 관(官) 주소를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 행정구역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원래 구천동 계곡에는 사찰이 14곳이나 있었을 정도로 근방에 불교가 융성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불도를 닦는 신자가 9천 명이나 돼 '구천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가 전하고, 70리를 돌아가는 물굽이가 9천 개나 돼 '구천동'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옛날에는 나제통문에서 백련사에 이르는 구간이 주 등산로였다. '33경'도 이곳을 기준으로 만들었다. 요즘은 삼공리주차장에서 백련사에 이르는 6㎞ 구간을 트레킹 코스로 주로 이용한다. 교통, 접근성이 좋고 바로 계곡을 끼고 등산로로 접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오리 길엔 지금도 폐사지, 소규모 캠핑장이 남아 있다. 옛날엔 계곡 옆으로 많은 민가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구한말-6'25전쟁 때는 호국성지로
삼공리 주차장을 출발한 대원들은 땀을 흘리며 구천동계곡으로 접어들었다. 아직 더위가 시설지구를 달구고 있지만 계곡의 서늘한 기운에 등산로 주변 폭염은 어느 정도 제압된 상태. 선녀들이 밤에 내려와 춤을 추었다는 '월하탄'을 선두로 비파담, 구월담, 금포탄, 안심대 같은 명소들이 5분 간격으로 펼쳐졌다. 이런 비경의 '인플레'에 경치 희소성이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김연식(53'여'대구시 동구 신암동) 씨는 "예쁜 곳도 세 번만 보면 가치가 반감된다는데 명소가 살짝 '남발'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계곡을 따라 올라 가면서 이곳이 한때 호국의 성지로 활약했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계곡 한쪽엔 일제강점기 때 의병대장 문태서(文泰瑞)를 기리는 순국비와 6'25전쟁 때 구천동에서 인민군에 희생당한 장병을 기리는 '구천동수호비'가 세워져 있다. 문태서 호남의병대장은 1905년 을사늑약이 조인되자 덕유산을 거점으로 의병단을 결성했다. 신출귀몰하는 병법으로 덕유산 일대에서 500여 차례 일본군을 섬멸했다. 고향 안의에서 왜병에 체포돼 경성형무소에서 34세로 옥사했다. 이런 비경 속에 상흔이 서려 있다는 게 부조리하게 느껴지지만 역사는 역사고 자연은 자연일 뿐이다.
연하폭까지 계속되던 '비경 시리즈'는 백련사 앞 '이속대'(離俗臺)에서 끝이 났다. 우뚝 선 일주문은 이름처럼 성(聖)과 속(俗)을 가르는 경계 구실을 하고 있었다.
백련사는 신라 신문왕 때 세워진 고찰로 전화(戰火) 때마다 소실을 거듭했다. 지금 건물은 6'25전쟁 직후 중건된 것이다. 대웅전 현판을 올려다보니 낙관이 한석봉(韓石峯)이었다. 조선 3대 명필 중 한 명이었던 한호(韓濩)는 조선은 물론 명에서도 명성이 높아 조야(朝野)에서 그의 서첩 한두 점 소장하는 것을 명예로 알았다고 한다. 조선에 온 명 사신들의 주요 일과가 그의 글씨를 얻어가는 것이었다 하니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원정대는 백련사 대웅전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하산 길 폭염은 아직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길옆에서 하산주를 나누던 등산객들이 엄 대장에게 막걸리를 권하자 "캬~" 하고 받아 마시고는 바람처럼 사라져 갔다. "빨리 가서 DMZ 행사 결산해야 해요. 도와주신 분들 인사도 해야 되고." 폭염조차도 저 부지런한 엄 대장을 어찌하지 못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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