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종문의 한시 산책] 사면령 받고 돌아가는 길, 천리도 쏜살같이 지나가

중국 장강 삼협.
중국 장강 삼협.

만 겹 산을 다 지났네

이백

이른 아침 백제성의 채색구름 뚫고 떠나

천 리라 강릉길을 하루 만에 돌아왔네

양쪽 벼랑 파노라마 된 원숭이 울음 뚫고

경쾌한 배는 이미 만 겹 산을 다 지났네

朝辭白帝彩雲間(조사백제채운간)

千里江陵一日還(천리강릉일일환)

兩岸猿聲啼不盡(양안원성제부진)

輕舟已過萬重山(경주이과만중산)

*원제: 早發白帝城(조발백제성: 이른 아침 백제성을 떠나)

이백(李白:701-762)의 나이 57세 때, 그는 역적 죄를 뒤집어쓰고 심양(瀋陽) 감옥에 투옥되었다. 정말 뜬금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는 장강(長江'양자강)의 머나먼 상류 지역인 야랑(夜郞)으로 유배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역시 느닷없는 명령이었다. 그는 줄잡아 수만 리 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장강 중류의 빼어난 절경인 백제성에 도착하였다. 아직도 유배지인 야랑까진 갈 길이 까마득하게 남아 있었다. 야랑에 가봐야 환영 피켓을 높이 쳐들고 기다리고 있는 예쁜 처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앞앞이 한숨이고 구석구석이 눈물이었다. 이백은 흰 머리카락을 바람에 나부끼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저무는 장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조정에서 보낸 사자(使者) 하나가 속달 편지 한 통을 들고 이백에게 헐레벌떡 달려들었다. 편지를 뜯는 이백의 손이 공포와 불안으로 부들부들 떨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그의 입이 하양 장 바소쿠리처럼 크고도 환하게 벌어졌다. 정말 뜻밖의 사면령이었다. 그는 한꺼번에 열일곱 번이나 환호작약(歡呼雀躍)의 뜀박질을 하였다. 해방이 된 이백은 그 다음 날 새벽 동이 트자마자 유턴하는 배에다 몸을 실었다.

보다시피 이 시는 사면령을 받고 돌아오는 배의 그 엄청난 스피드를 서술한 것이 내용의 전부다. 시인이 탄 일엽편주는 정구공이 벽을 맞고 튀어나오듯 백제성을 박차고 힘껏 고향을 향해 튀어 나간다. 급기야 배는 갑작스런 병목 현상에 따라 험준하게 치솟은 벼랑 사이로 물결이 정말 미친 듯이 휘돌아 흐르는 천하의 절경 삼협(三峽)을 뚫고, 그야말로 쏜살같이 내달린다. 그러다 보니 강릉까지는 거리가 무려 천 리나 되는데도, 걸린 시간이 고작 단 하루에 불과하다. 내용과 함께 리듬의 흐름도 일사천리(一瀉千里)에다 일필휘지(一筆揮之)다.

3구와 4구는 그 배의 속도를 좀 더 실감 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삼협에는 예로부터 애달프게 울어대는 원숭이가 많다. 지금 원숭이들은 제각각 제 삶의 슬픔을 울어대고 있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들입다 내달리는 뱃전에서 들어보면, 울음과 울음이 쭉 이어지면서 울음의 파노라마 현상이 생긴다. 매미가 죽자 살자 울어댈 때 가로수 샛길을 자동차로 힘껏 달리다 보면, 가로수는 물론이고 매미 울음소리도 파노라마가 되는 것과도 같은 현상이다. 그런데 바로 그 원숭이들의 애달픈 울음의 파노라마가 아직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시인이 탄 날렵한 배는 이미 만 겹 첩첩 산, 그 울음의 터널을 냅다 통과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슬픔 끝, 기쁨 시작'이다. 야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