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라는 드라마의 한 대목이 생각납니다. 고려 말에 공녀로 원나라에 보내졌던 주인공 '기승냥'이 원의 황제 타환의 후궁을 뽑는 경선에 참가합니다. 경선 문제 중에 두 번째 과제가 궁에서 가장 귀중한 음식을 가져오는 것이었는데, 기승냥은 타환의 정실 황후인 타나실리의 모함과 음모로 인해 다른 경쟁자들과 달리 음식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전전긍긍하던 끝에 그녀가 가져온 것은 소금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비웃고 있을 때 기승냥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소금이옵니다. 여기 나와 있는 모든 음식에는 소금이 들어 있사옵니다. 제 한 몸을 녹여 맛을 내주는 소금처럼, 이 나라 백성들은 황제 폐하의 올바른 정치와 따뜻한 관심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폐하, 모든 음식에 필요한 이 소금처럼 부디 백성들 마음에 녹아드는 황은(皇恩)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지만 주인공의 이 한마디가 여운을 남기기에 메모해 두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 설교 중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복음 5장 13절) 교회와 교회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당신을 따르는 삶의 기본 원칙으로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기술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쉽고 싸게 소금을 구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하얀 황금이라고 불릴 정도로 소금은 귀한 존재였습니다. 중세시대에 유럽 곳곳에서 소금 제조나 채취는 중요한 사업으로 인식되었고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는 소금광산으로 부를 축적한 대표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생활필수품이었던 소금은 화폐의 수단으로도 사용되어 로마에서는 군인이나 관리의 봉급을 대신해서 소금을 지급하였다고 합니다.
소금은 짭니다. '짠돌이'라고 할 때에는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소금은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합니다. 소금은 몸의 상처를 소독하기도 합니다.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 된다는 것은 세상 속에 녹아 들어가 살맛 나는 세상으로 만들고 세상을 부패로부터 보호하고 또한 아픈 이들의 상처를 돌보라는 말씀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소금이 소금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녹여야 합니다. 소금이 녹지 않고 어떻게 음식의 맛을 내겠습니까? 소금이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녹여서 자신의 흔적이 없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1962년에 개막되어 1965년에 폐막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마의 바티칸에서 열렸던 세계 주교회의)는 개혁 공의회라 불립니다. 공의회는 변화하는 세상 안에서의 교회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공동체이기에 세상 안에 들어가야 하며, 세상 안에 녹아서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공의회 이전의 교회가 '짠 소금'에 머물렀다면, 공의회 이후는 '녹는 소금'이 되자는 자성의 목소리였습니다.
교회가 세상 안에서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은 교회 본연의 사명이지만, 소금의 역할은 위정자들에게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덕목일 것입니다. 얼마 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약칭 청탁금지법, 별칭 김영란법)이 헌법재판소에서 합헌으로 결정이 내려졌는데, 시행되기도 전에 개정 운운하는 등 의견이 분분합니다.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부정부패를 정화시켜 보자는 법의 취지에는 공감이 가는데도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사람들이 자신은 녹지 않고 소금을 뿌려대기만 하는 모습으로 연상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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