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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평화는 싸움 끝에 오네

김수상
김수상

제가 사는 동네에는 '월광수변공원'이 있어요. 그 공원에는 '수밭재'라는 아름다운 보(洑)가 있는데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구청에서 난간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아크릴을 통째로 막아 난간을 만들다 보니, 높이는 높고 바람은 통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이나 키가 작은 사람들은 밖을 볼 수가 없는 참으로 답답한 난간이었죠. 밤에는 형형색색의 불까지 들어오다 보니 잠을 설친 인근 주민들이 '수변나이트'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어요.

참다못한 주민들이 '수사모'(수변공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만들어 수변공원을 찾는 분들의 서명을 받고, 구청에 항의를 하고, 현수막을 걸었어요. 그렇게 싸웠더니 얼마 전 아크릴 난간이 친환경목재 난간으로 교체되었어요. 새벽에 새로 바뀐 난간을 걸어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군요. 청룡산의 푸른빛과 흰색 아크릴의 부조화 때문에 그쪽으로는 눈길조차 주기 싫더니, 새로운 난간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염천의 더위를 잊게 해주었어요.

예술작품 혹은 예술 설치물을 대중을 위해서 설치했지만, 이용하는 사람들이 반감을 가지거나 불편해하면 저는 그것을 철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을 설계한 예술가의 처지에서 보면 마음이 아픈 일이겠지만, 공공재와 예술이 결합할 경우에는 대중의 편익성에 더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철거를 하고 다시 설치를 하면 비용이 배로 들 텐데, 그게 주민의 세금을 낭비하는 어리석은 짓이 아니냐는 항변도 있겠지요. 하지만 주민 다수가 혐오하는 설치물이라면 비용이 더 들더라도 보는 사람의 눈이 편하고,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설치물로 바꾸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예술은 본능적으로 전위를 옹호하는 편이지만, 대중은 불편하거나 눈을 너무 자극하는 것을 못 견뎌 하지요. 그것을 무시하고 대중에게 무작정 인내하라고만 하면 그것은 폭력이 되겠지요.

동네 공원에 난간 하나를 설치하는 일도 이렇게 복잡합니다. 하물며 핵무기를 격파하는 미사일이 자기 동네 앞산에 들어온다고 하는데 묻고 따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주민의 동의가 없이 추진된 일은 그 일을 추진한 사람들이 일을 도모한 까닭을 밝혀야만 마땅합니다.

길을 가다가 이유도 모르고 매를 맞았는데, 매를 맞은 사람 보고 매를 맞은 까닭을 밝히라고 하면 누가 가만히 있겠어요. 어떤 사람들은 미사일이 평화를 지켜준다고 믿고 있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미사일이 가야만 평화는 온다고 매일 저녁 촛불을 밝힙니다. 문제는 미사일이 아니고 평화입니다. 평화를 중심에 놓고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목재로 된 새 난간 하나를 얻기 위해 싸운 것이 아니고, 자연환경과 난간의 조화를 위해 힘을 합쳐 싸웠습니다. 그냥 주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더군요. 싸워야 바뀌고 싸워야 비로소 이기네요. 이 한심한 공화국의 작은 동네에서조차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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