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프지만 장인어른이 더 걱정입니다."
임성재(가명'53'호흡장애 2급) 씨는 몇 달 전 집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날 임 씨는 윗배를 부여잡고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베트남어로 말하는 장인어른(64'베트남인)을 앞에 두고 어쩔 줄을 몰랐다. 임 씨는 아내의 모국어인 베트남어를 전혀 몰라 장인어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고 설상가상 통역을 해줄 수 있는 아내조차 곁에 없었다.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진땀을 빼고 있는데,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교한 아홉 살배기 딸 민주(가명)가 장인어른에게로 달려왔다. 평소 장인어른을 잘 따르던 어린 딸은 힘없이 웅얼거리는 장인어른의 말을 금방 알아들었다. "딸이 외할아버지 배가 아프다고 전해주더군요. 순간 막막했습니다."
◆효심 깊은 사위
임 씨는 한국에 들어온 베트남인 장인'장모를 2012년부터 올해 초 비자가 만료될 때까지 모시고 살았다. 몇 달 전부터 장인은 윗배 통증을 호소했지만 병을 고치지 못한 채 비자가 만료돼 장모와 함께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병을 방치해 둔 탓에 장인의 통증은 점점 심해졌고 임 씨는 장인의 병을 한국에서는 고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6월 초 장인을 다시 한국으로 모셔왔다.
"아프시다는 부위를 만졌는데 돌덩어리같이 딱딱하더라고요." 장인은 대구의 한 대형병원에서 '쓸개에 염증이 생겨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고 7월 초 수술을 했지만 이후 폐렴까지 겹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의료진은 회복에 두 달은 필요하다고 했지만 장인은 일주일 만에 퇴원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탓에 진료'수술비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1시간짜리 수술에 수술비만 800만원 가까이 나왔고, 친구에게 돈을 빌려 어떻게든 수술비는 정산했지만 빚은 쌓여만 갔다. "내가 몸이 성치 않아 일을 못 하는 바람에 돈 갚을 일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호흡장애로 외출도 힘들어
임 씨는 10년 전 발병한 결핵으로 호흡장애를 앓고 있다. 임 씨가 베트남인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을 즈음이다. 결핵을 앓으면서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은 물론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한 지 벌써 4년이 됐다. 특히 요즘처럼 덥고 습한 여름에는 100m를 걸으려면 몇 번을 쉬어야 할 정도로 호흡이 가빠 외출조차 하지 못한다.
"처음 발병했을 때 병원에서 완치했지만 나오자마자 다시 일을 시작한 게 화근이 됐어요. 왼쪽 폐가 기능을 전혀 못해요." 먼지가 많고 작업 환경이 열악한 공사 현장은 결핵환자에겐 최악이었다. 아내와 갓 태어난 딸을 먹여 살리려고 아픈 줄도 모르고 일하다 결국 몸은 축났고 병은 깊어졌다. 현재는 호흡이 힘들어지면 입원하고 괜찮아지면 퇴원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지만 수술로도 병을 고칠 수가 없다. 환경이 안 좋아지면 언제 숨이 넘어갈지 몰라 아내가 항상 임 씨의 곁을 지킨다.
◆아내 보살핌에 의지하는 몸
지난 3월 임 씨는 거의 죽다 살았다. 집에 멀쩡히 있다가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쓰러졌고 혼비백산한 가족들이 119를 불러 임 씨는 병원으로 이송됐다. 의사는 가족들에게 "환자가 이대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다행히 임 씨는 그를 둘러싼 가족들 사이에서 한 시간 만에 눈을 떴다. 병원 관계자는 임 씨의 어려운 형편을 알고 산소호흡기를 마련해줬다. "고마운 분들이 참 많은데 외출을 하지 못해 찾아뵙지도 못하네요." 임 씨의 콧잔등을 따라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렸다.
건강이 좋지 않은 임 씨 대신 아내가 돈을 벌어야 하지만 임 씨를 보살펴야 하는 아내는 집에서 하는 부업밖에 할 수 없다. 임 씨가 1년 전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면서 한 달에 100만원 정도가 나와 살림살이에 보태고 있지만 장인'장모 뒷바라지까지 하는 임 씨네 가족이 생활하는 데 충분치는 못하다. "쓸모없는 몸이라 돈을 벌지 못하는 게 집사람에게 가장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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