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포기를 모른 劍, 패기로 오른 金…박상영, 남자 펜싱 에페 첫 金

결승서 헝가리 백전노장 임레 꺾어

박상영이 10일 리우 올림픽 남자 펜싱 에페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뒤 한국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하고 있다. 붉은색 트레이닝복 차림을 한 채 박상영 뒤에서 인터뷰 중인 선수가 헝가리의 제자 임레다. 채정민 기자 cwolf@msnet.co.kr
박상영이 10일 리우 올림픽 남자 펜싱 에페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뒤 한국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인터뷰하고 있다. 붉은색 트레이닝복 차림을 한 채 박상영 뒤에서 인터뷰 중인 선수가 헝가리의 제자 임레다. 채정민 기자 cwolf@msnet.co.kr

사방이 어두운 가운데 두 검사가 마주 선 곳에만 조명이 비쳤다.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심판이 '앙가르드'(준비), '알레'(시작)라 외쳤음에도 검사들은 미동이 없었다. 잠시 후 검사들이 앞뒤로 움직이자 '찍'하며 신발 밑창과 지면이 닿는 마찰음이 이어졌고 '챙' 하는 금속성 소리와 함께 두 개의 검이 섞였다. 곧 바닥에 공격 성공을 알리는 녹색 불빛이 들어오고, 대역전극을 완성한 한국인 검사가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검을 번쩍 치켜들며 포효했다.

가뭄 속의 단비였다. 10일 리우 올림픽 남자 펜싱의 박상영(21'한국체대)이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쓰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도를 비롯해 메달 유망주들이 잇따라 낙마, 한국 대표팀의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은 가운데 박상영이 투혼 넘치는 플레이로 금메달을 수확하면서 대표팀의 발걸음에 다시 힘이 붙게 됐다.

펜싱 대표팀의 막내 박상영은 10일 리우의 카리오카 아레나 3에서 열린 남자 펜싱 에페 개인전에서 젊음을 무기로 거침없이 진격했다. 32강전을 가볍게 통과한 뒤 4강까지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갔다. 세계 랭킹은 21위에 불과했고, 무릎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았으나 박상영의 상승세는 꺾일 줄 몰랐다.

결승전 상대는 세계랭킹 3위인 제자 임레(42'헝가리). 그는 백전노장답게 젊은 박상영의 저돌적 공세에도 좀처럼 무너지지 않았다. 박상영은 결승전 내내 임레에게 밀렸다. 패기를 앞세운 박상영이 검을 들고 달려들었으나 임레의 득점을 알리는 붉은 불빛이 더 자주 깜빡거렸다.

어느새 점수는 10대14로 벌어졌다. 1점만 더 내주면 박상영의 패배가 확정되는 상황. 임레가 워낙 노련한 선수였기에 사실상 승부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이때 '설마'하던 일이 일어났다. 배수진을 친 박상영이 적극적으로 공격을 전개하면서 순식간에 4점을 만회했다. 놀라운 광경에 관중은 함성을 지르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14대14 동점 상황에서 박상영은 기습적인 찌르기를 시도했다. 무모한 듯 보였던 공격 끝에 녹색 불빛이 들어오고, 박상영의 승리가 확정됐다. 믿기지 않는 승부에 관중석은 흥분의 도가니가 됐다. 국적도 상관없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관중은 자국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것처럼 기립 박수와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취재진을 향해서도 '코리아'를 외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애초 박상영은 대회에 앞서 금메달을 따겠다고 밝혔지만, 그 목표가 이뤄지리라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지난해 3월 왼쪽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받은 뒤에도 훈련을 좀 많이 한다 싶으면 다리가 붓는 등 몸 상태도 최상이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기적 같은 5연속 득점을 성공하며 역전 우승을 달성했다.

박상영은 "10대14로 몰렸을 때 '너무 급해' '침착하게 수비부터'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며 "가장 고마운 건 왼쪽 무릎이다. 잘 버텨줘서 고맙다. 부모님께도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또 "사실 개인전보다는 단체전 금메달을 바라보고 여기 왔다. 남은 단체전에서도 열심히 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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